국보탐방

국보제112호감은사터삼층석탑

신용짱 2017. 9. 2.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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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8월27일(일) 경상남북도 여행중 경주를 찿아 여러번 방문했어도 제데로 구경하지못한곳을 찿아가는 여행을 하였다.  그중 사적제31호로 지정된 감은사지에 있는.  국보제112호감은사터삼층석탑을 카메라에 담와왔다

디카속 "국보제112호감은사터삼층석탑"의모습을 펼쳐봅니다.

 

 ▲감은사지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제31호로 지정된곳입니다 

국보제112호 감은사터삼층석탑의 모습인데요 넓은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 쌍탑으로. 그크기부터 보는이를 압도하게 합니다 이탑은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옛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쌍탑가람으로 가는 최초의 배치를 보여주고있다고합니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佛心)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세운 절로, 동해 바닷가인 이 곳에 터를 잡았다합니다. 문무왕은 생전에 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고, 그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완공하였으며. 이러한 호국사상은 탑에도 이어져 장중하고 엄숙하면서도 기백이 넘치는 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합니다.

▲감은사터 석탑 주변 발굴된 석조기단

▲감은사터  삼층석탑중 서탑모습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개의 부분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탑을 세운 시기는 신문왕 2년(682)으로,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쪽탑 3층 몸돌에서 금동 사리기(보물 제366-1호)와 금동 사리외함(보물 제366-2호)이 발견되었다. 경주에 있는 삼층석탑으로는 가장 거대하며,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모습은 실로 한국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감은사터  삼층석탑 국보제112호 설명

 

 

▲감은사터 사적제31호  설명

 

▲감은사터  삼층석탑중 동탑모습

▲감은사터가 사적제31호임을 알리는 문화재청 비석 

▲국보제112호 감은사터  삼층석탑  모습

▲국보제112호 감은사터  삼층석탑  인증셀카

▲문무대왕릉 모습~사적제158호

▲문무대왕릉 설명판  (사적제158호)

신라 30대 문무왕(재위 661∼681)의 무덤이다. 동해안에서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는 수중릉으로, 신라인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문무왕은 아버지인 태종 무열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또한 병부, 창부 등 중앙관청을 창설하였고, 지방통치를 위한 5소경제도와 9서당 10정의 군사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국가 체제 완성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대왕암은 자연 바위를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그 안은 동서남북으로 인공수로를 만들었다. 바닷물은 동쪽에서 들어와 서쪽으로 나가게 만들어 항상 잔잔하게 하였다. 수면 아래에는 길이 3.7m, 폭 2.06m의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한 거북모양의 돌이 덮혀 있는데 이 안에 문무왕의 유골이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이 죽으면서 불교식 장례에 따라 화장하고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아들 신문왕은 동해 근처에 감은사를 세워 법당아래 동해를 향한 배수로를 만들어 용이 된 문무왕이 왕래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문무대왕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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