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9월1일 가족여행으로 경주를 여행하던중 국보제36호 황복사지삼층석탑을 보기위해 황복사지를 찿아갔다 국보제37호 황복사지3층석탑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통일신라 신문왕이 돌아가신 후 그 아들인 효소왕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고자 세운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며,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이나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8호)에 비해 작은 규모이다.
기단의 양식은 두 탑과 거의 비슷하나, 기단의 각 면에 새겨진 가운데 기둥이 3개에서 2개로 줄어 있다. 탑신부도 여러개의 돌로 짜맞추는 대신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어, 달라진 석탑의 양식을 보여준다. 지붕돌은 윗면이 평평하고 네 귀퉁이가 살짝 올라가 경쾌하며,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만이 남아있다.
효소왕 1년(692)에 세워진 탑으로, 이후 효소왕의 뒤를 이은 성덕왕이 즉위한 지 5년만인 706년에 사리와 불상 등을 다시 탑안에 넣어 앞의 두 왕의 명복을 빌고, 왕실의 번영과 태평성대를 기원하였다. 1942년 착수된 탑 해체수리 과정에서 2층 지붕돌 안에서 금동 사리함과 금동 불상 2구를 비롯하여 많은 유물을 발견하였는데, 그중 사리함 뚜껑 안쪽에 탑을 건립하게 된 경위와 발견된 유물의 성격이 기록되어 있어 탑의 건립 연대와 조성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면서도 전기 석탑양식의 변화과정이 잘 담겨져 있어 소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석탑은 높이 7.3m 인데 이중(二중)기단위에 3층으로 쌓아올린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석탑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있다
1943년 이 탑을 수리할때 순금으로 만든 여래좌상, 여래입상과 금동 사리탑이 나왔다
여래좌상의 높이는 12.2cm로 국보제79호이며 여래입상은 높이14cm로 국보제80호로 지정되어있다. 이 두불상은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합니다, 사리함 뚜껑의 안쪽면에 있는 장문의 영문(銘文)에 따르면 신라 효소왕(孝昭王)이 부왕인 신문왕(神文王)의 명복을 빌고자 692년에 이탑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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