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 묘

신숭겸(申崇謙)墓

신용짱 2020. 8. 2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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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8월23일 강원도 화천시와 춘천에 있는 용화산과 오봉산 산행을 다녀오던길에 춘천 장절공 신숭겸묘를 구경하고왔다.

申崇謙은 고려 초의 용맹한 장수로 궁예를 폐하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 개국의 대업을 이룬 일등공신으로 공산전투에서 견훤의 군대에게 태조 왕건이 포위되자 그를 구하고자 왕건의 옷을바꿔입고 왕건을 피신하게하여 적을 속인후 맹렬히 싸우다 전사했다한다,

▲高麗太師壯節公申崇謙將軍像(고려태사장절공신숭겸장군상)

▲高麗太師壯節公申崇謙將軍像

▲전사청

▲충열문

▲장절사

▲高麗太師壯節公申崇謙將軍 신도비와 비각

▲高麗太師壯節公申崇謙將軍 신도비

이 비는 대구 팔공산에서 태조 왕건을 대신하여 죽은 신숭겸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805년(순조5)에 세운 것이다.

春川(춘천) 壯節公(장절공) 申崇謙(신숭겸) 神道碑(신도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55호)
碑(비)의 규모는 비신의 높이 228cm, 폭 106cm, 두께 39cm. 1805년(純祖 5) 건립한 申崇謙(신숭겸) 神道碑(신도비)는 碑閣(비각)을 건립하여 보관하고 있다. 碑(비)는 조선시대 일반적인 형태인 팔각지붕형 갓석과 비신, 비대석으로 되어 있다.
조선 순조 5년(1805)에 세운 신장절공 신도비는 당시의 세도가 영안부원군 김조순(金祖淳)이 짓고, 글씨는 신위(申緯)가 썼고, 전자(篆字)는 서매수(徐邁修)가 썼다. 신위는 조선시대 4대 명필가였으며, 서매수는 당시 좌의정이었다.

 

▲高麗太師壯節公申崇謙將軍 신도비설명

▲장절사

▲高麗太師壯節公申崇謙將軍 신장절공묘역안내

▲高麗太師壯節公申崇謙將軍 묘 오르는 소나무숲길

▲高麗太師壯節公申崇謙將軍 묘 오르는 소나무숲길

▲高麗太師壯節公申崇謙將軍 묘 오르는 소나무숲길

▲高麗太師壯節公申崇謙將軍 묘 ~특이하게도 봉분이 세개나됩니다

▲高麗太師壯節公申崇謙將軍 묘 묘비

▲高麗太師壯節公申崇謙將軍 묘 묘비~(고려태사장절공신숭겸지묘高麗太師壯節公申崇謙之墓)

▲高麗太師壯節公申崇謙 墓 오르는 소나무숲 전경

▲高麗太師壯節公申崇謙 墓 오르는 소나무숲 전경

▲高麗太師壯節公申崇謙 墓 오르는 소나무숲 전경

▲高麗太師壯節公申崇謙 墓 오르는 소나무숲 전경

申崇謙

초명 능산(). 시호 장절(). 평산씨()의 시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전라도 곡성현() 출생으로, 《고려사》에는 광해주(: ) 출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918년 태봉()의 기장()으로 배현경()·홍유()·복지겸() 등과 협력, 궁예()를 폐하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 개국의 대업을 이루었다. 927년(태조 10) 공산()에서 견훤()의 군대에게 태조가 포위되자 김락() 등과 함께 역전하여 이를 구출하고 전사하였다. 1120년(예종 15) 예종은 그와 김락을 추도하여 《도이장가()》라는 향가를 지었다. 삼중대광()에 태사()로 추증되었으며,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고 곡성()의 양덕사(), 대구광역시의 표충사(), 춘천의 도포()서원, 평산()의 태백산성사()에 제향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숭겸 [申崇謙]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