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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1997년 8월8일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도이다. 해인사에 있는 이 불화는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고, 길이 334㎝, 폭 240㎝이다.
이 그림은 본존인 석가불을 중심으로 주변에 여러 무리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영산회상의 법회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였다. 중앙에 있는 석가는 손가락을 땅으로 향하게 하여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지닌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앉아 있다. 다른 무리들에 비해 유난히 신체가 크며, 떡 벌어진 어깨로 인해 보는 이를 압도하는 듯하지만 둥근 얼굴과 엷은 미소로 부드러움과 넉넉함도 느끼게 한다. 중앙의 석가불을 중심으로 많은 무리들이 대집단을 이루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그 모습이 서로 닮아 도식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채색은 밝은 홍색과 녹색 바탕에 흰색과 금칠을 해서 전체적으로 밝고 화사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옷과 대좌 등에 표현된 색상과 문양에서 정교함과 꼼꼼함을 엿볼 수 있다.
영조 5년(1729) 승려화가 의겸이 참여한 그린 그림으로 주변에 무리들이 많지만 적절하게 배치하여 시선을 탁 트이게 해주는 구도와 격조 높은 색채와 문양, 정교한 필치 등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그림에 기록된 글로 화가와 제작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교회화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그림은 본존인 석가불을 중심으로 주변에 여러 무리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영산회상의 법회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였다. 중앙에 있는 석가는 손가락을 땅으로 향하게 하여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지닌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앉아 있다. 다른 무리들에 비해 유난히 신체가 크며, 떡 벌어진 어깨로 인해 보는 이를 압도하는 듯하지만 둥근 얼굴과 엷은 미소로 부드러움과 넉넉함도 느끼게 한다. 중앙의 석가불을 중심으로 많은 무리들이 대집단을 이루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그 모습이 서로 닮아 도식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채색은 밝은 홍색과 녹색 바탕에 흰색과 금칠을 해서 전체적으로 밝고 화사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옷과 대좌 등에 표현된 색상과 문양에서 정교함과 꼼꼼함을 엿볼 수 있다.
영조 5년(1729) 승려화가 의겸이 참여한 그린 그림으로 주변에 무리들이 많지만 적절하게 배치하여 시선을 탁 트이게 해주는 구도와 격조 높은 색채와 문양, 정교한 필치 등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그림에 기록된 글로 화가와 제작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교회화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권속들이 현저히 증가하여 대형화한 군도형식의 절정을 이루고 있는 이 불화는 많은 권속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구도의 묘를 잘 살려내고 있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하단에서부터 상단에 이르기까지의 권속들은 4구의 사천왕과 26구의 보살무리, 아난·가섭존자, 50나한, 팔부중과 기타 여러 신들, 144분에 이르는 분신불과 12분의 타방불 등 모두 240여구에 달할 정도로 대집단을 이루며 화면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이 막히지 않고 탁 트인 이유는 권속을 각 무리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열지어 배치하고, 상단으로 올라갈수록 인물의 크기를 점점 작게 표현하여 보는 사람의 시선을 위로 모으는 상승효과를 최대한 살려주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항마촉지인에 결가부좌한 채 전신(全身)에서 사방으로 빛이 뻗쳐 나가고 있는 본존불은 권속들에 비하여 유난히 크고 떡벌어진 어깨로 건장하여 예배자를 압도하고 있지만, 둥근 얼굴과 엷은 미소로 인하여 원만함과 부드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 외의 인물상들은 마치 한가지 본을 사용하여 그린 듯 모습들이 서로 유사하고 닮아 있어 다소 도식적인 느낌이다. 구도와 더불어 이 불화에서 주목되는 점은 본존불 및 권속들의 옷과 대좌 등에 표현된 정교한 문양으로서, 거의 빈틈없이 빽빽하게 시문(施紋)된 금니(金泥)와 채색문양은 과다할 정도이지만 정교하고 꼼꼼함이 돋보인다.
밝은 홍색과 녹색의 주조색에 흰색과 금니를 적절히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밝고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데, 특히 불ㆍ보살의 피부와 옷의 문양에 집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금니는 이 불화만이 가진 독특한 특징이라 하겠다. 또한 이 불화는 화기(畵記)에 의해 당대의 거장인 의겸비구(義謙比丘)가 주도하여 영조 5년(1729)에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지금껏 사용되지 않았던 「호선(毫仙)」이란 당호(堂號)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완숙기의 작품임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불화는 정착된 군도형식의 구도와 격조높은 채색, 정교한 필치 등 양식적 특징과 함께 당시 최고의 불화승들에 의하여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후기 불교회화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항마촉지인에 결가부좌한 채 전신(全身)에서 사방으로 빛이 뻗쳐 나가고 있는 본존불은 권속들에 비하여 유난히 크고 떡벌어진 어깨로 건장하여 예배자를 압도하고 있지만, 둥근 얼굴과 엷은 미소로 인하여 원만함과 부드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 외의 인물상들은 마치 한가지 본을 사용하여 그린 듯 모습들이 서로 유사하고 닮아 있어 다소 도식적인 느낌이다. 구도와 더불어 이 불화에서 주목되는 점은 본존불 및 권속들의 옷과 대좌 등에 표현된 정교한 문양으로서, 거의 빈틈없이 빽빽하게 시문(施紋)된 금니(金泥)와 채색문양은 과다할 정도이지만 정교하고 꼼꼼함이 돋보인다.
밝은 홍색과 녹색의 주조색에 흰색과 금니를 적절히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밝고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데, 특히 불ㆍ보살의 피부와 옷의 문양에 집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금니는 이 불화만이 가진 독특한 특징이라 하겠다. 또한 이 불화는 화기(畵記)에 의해 당대의 거장인 의겸비구(義謙比丘)가 주도하여 영조 5년(1729)에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지금껏 사용되지 않았던 「호선(毫仙)」이란 당호(堂號)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완숙기의 작품임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불화는 정착된 군도형식의 구도와 격조높은 채색, 정교한 필치 등 양식적 특징과 함께 당시 최고의 불화승들에 의하여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후기 불교회화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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