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여행

남원실상사

신용짱 2018. 2. 2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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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2월23일 지리산 산행을 갔다가  올라오는길에 남원실상사를 구경하였다

많은 역사적 문화재를 소장한 실상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증각대사 홍척이 창건하였으며, 제자 수철대사와 편운대사도 이 절에서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조선 정유재란 때 화재를 입어 20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고, 승려들은 백장암에서 머물며 그 명맥을 이어오다. 숙종 때 다시 지었고 고종 때 화재를 입어 작게 지은 것이 현재의 모습이랍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보광전·약사전·명부전 등이 있지요

▲실상사 매표소입니다~성인 1,500원

실상사의 중요문화재로는 백장암 3층석탑(국보 제10호)·실상사 수철화상능가보월탑(보물 제33호)과 탑비(보물 제34호)·실상사 석등(보물 제35호)·부도(보물 제36호)·실상사 3층석탑(보물 제37호)·증각대사응료탑(보물 제38호)과 그 탑비(보물 제39호)·백장암 석등(보물 제40호)·실상사 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보물 제420호)·약수암 목조탱화(보물 제421호) 등이 있습니다.

▲실상사 입구  다리건너기전에 있는 석장승 설명~중요민속문화재 제15호라네요

▲실상사 입구  다리건너기전에 있는 석장승  좌측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세워져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구실을 한다고 여겨지며. 실상사 입구에 있는 3기의 돌장승 역시 경계표시와 함께 경내의 부정을 금하는 뜻에서 세운 것으로 보여집니다.

▲실상사  다리 건너기전 우측 석장승 ~누워있는 형태로 홍수에 유실된 두상을 새로 만들어 놓았네요 ~머리와 몸통 색이 다르지요

만수천의 해탈교를 건너기 전 마을쪽에 있는 돌장승이 옹호금사축귀장군(擁護金沙逐鬼將軍)이고, 해탈교를 건너자 마자 길 좌우에 2기의 돌장승이 마주보고 서 있는데. 오른쪽 논두렁 가에 있는 돌장승이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고, 왼쪽의 괴목 아래 서 있는 돌장승이 대장군(大將軍)이랍니다.

▲실상사  다리 건너 다시 만나는 또다른 석장승 우측~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실상사  다리 건너 다시 만나는 또다른 석장승 설명~중요민속문화재 제15호

▲실상사  다리 건너 다시 만나는 또다른 석장승 좌측 고목나무 밑~대장군(大將軍)

▲실상사  천왕문

▲실상사  안내판~실상사 일원이 사적제309호로 지정되어 있군요

▲실상사  천왕문 우측  북방다문천왕(좌),동방지국천왕(우)~이 사천왕상은 새로 조성된듯 하네요

▲실상사  천왕문 좌측  남방증장천왕(좌),서방광목천왕(우)

▲실상사  천왕문 남방증장천왕

▲실상사  천왕문 서방광목천왕

▲실상사  안내도

▲실상사  소리풍경  설명~소리비(정만영작가 설명)

▲실상사  소리풍경 소리비 들을수있는 건물

▲실상사  전통 화장실~고즈넉한 건물에서 지금도 용무를 볼수있네요

▲보물제39호실상사 증각대사탑비 문화재청 알림판및 비석

증각대사는 일명 홍척국사 ·남한조사로 불리며, 통일신라 헌강왕 때에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흥덕왕 1년(826)에 귀국한 뒤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사파를 일으켜 세운 고승이랍니다.

▲보물제39호실상사 증각대사탑비

비는 비몸돌이 없어진 채 현재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이 남아있다. 받침돌은 용의 머리를 형상화 하지않고 거북의 머리를 그대로 충실히 따랐다. 머릿돌은 경주의 ‘태종무열왕릉비’계열에 속하는 우수한 조각을 보여주는데, 앞면 중앙에 ‘응료탑비(凝蓼塔碑)’라는 비명칭을 새겨 두었다

▲보물제39호실상사 증각대사탑비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경주의 신라 무열왕릉비와 같이 한국 석비의 고전적 형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 대사의 묘탑인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보물 제38호)은 탑비의 뒤편 언덕에 세워져 있다.

▲보물제38실상사 증각대사탑 설명

홍척국사의 사리를 모신 탑으로, 팔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 전형적인 팔각원당형 탑이다. 홍척은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로 시호는 ‘증각’이다.

▲보물제38실상사 증각대사탑

탑의 기단(基壇)은 팔각형의 석재를 여러층 쌓은 뒤 연꽃이 피어있는 모양의 돌을 올렸다. 각 면의 조각들은 닳아 없어져 거의 형체를 알아보기가 힘들고 윗받침돌의 연꽃잎만이 뚜렷하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로 구성되었는데 낮은 편이다. 몸돌은 기둥 모양을 새겨 모서리를 정하고 각 면에 아치형의 문(門)을 새겼다. 그곳에 문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돋을새김하였다. 지붕돌에는 목조건축의 처마선이 잘 묘사되어 있다. 전체적인 조형과 조각수법으로 보아 9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보물제38실상사 증각대사탑 문화재청알림비

▲보물제38실상사 증각대사탑 을 다시한번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제45호 실상사극락전 설명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제45호 실상사극락전 알림 문화재청비석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제45호 실상사극락전

지리산에 위치한 실상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이 처음 지은 절로. 당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홍척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이 절을 지었다고 합니다.

극락전은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불에 탔다가 다시 지어졌으며. 절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자료에 의하면 순조 31년(1831)에 지어졌다고 한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제45호 실상사극락전 내부 ~아미타불


아미타란 이름은 산스크리트의 아미타유스(무한한 수명을 가진 것) 또는 아미타브하(무한한 광명을 가진 것)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한문으로 아미타()라고 음역하였고, 무량수()·무량광() 등이라 의역하였다. 정토삼부경()에서는, 아미타불은 과거에 법장()이라는 구도자(보살)였는데,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오랫동안 수행한 결과 그 원을 성취하여 지금부터 10겁() 전에 부처가 되어 현재 극락세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미타불 [阿彌陀佛] (두산백과)



▲실상사 내의 요사채 건물

▲실상사 극락전 모습을 다시한번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실상사 극락전은 전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칸에는 세짝의 문을 달았고 양쪽은 한짝 씩의 문을 달았다. 건물 안은 바닥에 마루를 깔고, 뒤쪽 높은 기둥 사이에 후불벽을 설치하고 불단 위에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보물제33호수철화상탑 설명

▲보물제33호수철화상탑 알림 문화재청비석

▲보물제33호수철화상탑

실상사 안에 있는 극락전을 향하여 그 오른쪽에 서 있는 탑으로, 수철화상의 사리를 모셔 놓은 사리탑이다. 수철화상은 신라 후기의 승려로, 본래 심원사(深源寺)에 머물다가 후에 실상사에 들어와 이 절의 두번째 창건주가 되었다. 진성여왕 7년(893)에 77세로 입적하니, 왕은 그의 시호를 ‘수철화상’이라 하고, 탑 이름을 ‘능가보월’이라 내리었다.

탑은 신라 석조부도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아 맨 아래 바닥돌에서 지붕까지 모두 8각을 이루고 있다.

▲보물제33호수철화상탑

기단(基壇)은 아래받침돌에 구름과 용무늬와 사자가 새겨져 있으나 마멸이 심하다.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가 삼중으로 조각되어 둘러져 있다. 8각의 탑몸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각 면에는 문(門) 모양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얇고 경사가 완만하며, 처마부분에는 엷은 곡선을 이루고 서까래를 새겼다. 지붕 경사면에는 기와골을 표시하였고, 그 끝에는 막새기와까지 표현함으로써 목조건축의 지붕 양식을 충실히 모방하였다. 꼭대기에는 몇 층의 단이 있고, 그 위에 원형이 작은 돌에 있을 뿐 모두 없어졌다.

탑 옆에는 탑비가 건립되어 있어서 이 탑의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 관련된 내용을 알 수 있다. 비문에 의하면, 수철화상이 진성여왕 7년(893)에 입적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탑을 세운 시기를 이 즈음으로 추측하고 있다.


▲보물제34수철화상탑비 설명

▲보물제34수철화상탑비 앞면

수철화상은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로, 본래 심원사에 머물다가 뒤에 실상사에 들어가 수도하였다. 진성여왕 7년(893) 5월 77세로 이 절에서 입적하자 왕이 시호와 탑명을 내렸다고 한다. 비문에는 수철화상의 출생에서 입적까지의 행적과 사리탑을 세우게 된 경위 등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실상사에서 입적하였으나 심원사의 승려이었기 때문에 비문에는 ‘심원사수철화상’으로 적고 있다. 비문을 짓고 쓴 사람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마멸과 손상이 심한 편이다.

▲보물제34수철화상탑비 뒷면

탑비의 형식은 당시의 일반적인 탑비 형식과는 달리 거북모양의 받침돌 대신 안상(眼象) 6구를 얕게 새긴 직사각형의 받침돌을 두어 그 위로 비를 세웠다. 비를 꽂아두는 비좌(碑座)에는 큼직한 연꽃을 둘렀다. 머릿돌에는 구름 속에 용 두마리가 대칭하여 여의주를 다투는 듯한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그 앞면 중앙에는 ‘능가보월탑비’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조각수법이 형식적이고 꾸밈이 약화된 경향이 뚜렷하다.

비의 건립 연대는 효공왕(재위 897∼912)대로 추정되고, 글씨는 당대를 전후하여 성행한 구양순체를 따랐다.

▲보물제 명부전 풍경

▲보물제37호남원실상사동서삼층석탑 설명

▲보물제37호남원실상사동서삼층석탑 문화재청 림비석

▲보물제37호남원실상사동서삼층석탑  동쪽탑

실상사의 중심법당인 보광전 앞뜰에 동·서로 세워져 있는 두 탑이다. 실상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洪陟)이 창건하였으며 풍수지리설에 의거하여, 이 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 하여 지은 것이라 한다. 이 곳에는 3층 석탑 이외에도 석등, 묘탑, 탑비, 부도, 철조여래좌상 등이 있어 유명하다.

▲보물제37호남원실상사동서삼층석탑  동쪽탑

▲보물제37호남원실상사동서삼층석탑  서쪽탑

▲보물제37호남원실상사동서삼층석탑  서쪽탑

▲보물제35호 남원실상사석등설명

▲보물제35호 남원실상사석등

실상사는 지리산 천왕봉의 서쪽 분지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洪陟)이 선종 9산의 하나로 실상산문을 열면서 창건하였다. 이 석등은 실상사 보광명전 앞뜰에 세워져 있다.

석등은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밑에 3단의 받침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는데, 평면은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받침부분의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8장의 꽃잎을 대칭적으로 새겼다. 화사석은 8면에 모두 창을 뚫었는데, 창 주위로 구멍들이 나 있어 창문을 달기 위해 뚫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가 모두 위로 치켜올려진 상태로, 돌출된 꽃모양 조각을 얹었다. 머리장식에는 화려한 무늬를 새겨 통일신라 후기의 뛰어난 장식성을 잘 보여준다.

▲보물제35호 남원실상사석등

이 석등은 규모가 커서 석등 앞에 불을 밝힐 때 쓰도록 돌사다리를 만들어 놓았으며, 지붕돌의 귀퉁이마다 새긴 꽃모양이나 받침돌의 연꽃무늬가 형식적인 점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인다.

▲남원실상사 보광전~

▲남원실상사 보광전 편액

▲남원실상사 보광전  내부

▲남원실상사 보광전 내부  동종~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37호

▲남원실상사 보광전 내부  동종~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37호 설명

▲남원실상사 칠성각

▲남원실상사 명부전

▲남원실상사 명부전 내부

▲남원실상사 약사전에 모셔진  보물제41호 철조여래좌상 설명

▲남원실상사 약사전~보물제41호 철조여래좌상이 모셔져있지요

▲남원실상사 약사전~보물제41호 철조여래좌상 알림 문화재청비석

보물제41호 철조여래좌상

머리에는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기교있게 붙여 놓았고, 정수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아담한 크기로 자리잡고 있다. 귀는 그런대로 긴 편이고, 목에 있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는 겨우 표현되고 있다. 좁아진 이마, 초생달 모양의 바로 뜬 눈, 다문 입 등의 근엄한 묘사는 이전의 활기차고 부드러운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어깨선이 부드럽고 가슴도 볼륨있게 처리되었지만 전반적으로 다소 둔중한 느낌을 주며, 양 어깨에 모두 걸쳐 입은 옷 역시 아래로 내려올수록 무거운 느낌을 준다. 옷주름은 U자형으로 짧게 표현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에 유행하던 옷주름 표현기법으로 비교적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보물제41호 철조여래좌상

보물제41호 철조여래좌상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실상사 창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는 유명한 철불이다. 통일신라 후기에는 지방의 선종사원을 중심으로 철로 만든 불상이 활발하게 만들어졌는데, 이 불상 역시 한 예로서 당시의 불상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실상사 목탑지설명

▲실상사 목탑지 풍경

▲실상사 범종각

▲실상사 범종

▲실상사 옛기와탑 설명

▲실상사 옛기와탑

▲실상사 밖의 연못지~지리산 천왕봉이 정면에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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