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3월22일(목) 충청남도 홍성군과 예산군에 걸쳐있는 100대명산 龍鳳山으로 산행을 다녀왔다
산행중 구경하게된 용봉사의 이곳 저곳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디카속 용봉사의 모습을 펼쳐봅니다
용봉사는: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 신경리 용봉산(龍鳳山)에 있는 절이다
▲용봉사 일주문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이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현존하는 유물로 볼 때 백제 말기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용봉사에 1690년(숙종 16)에 조성한 괘불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무렵 사찰이 존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괘불은 영산회상도로서 제작년도가 분명하고 기법도 뛰어나 보물 제1262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사찰 서편의 조금 높은 곳에 있던 옛 절이 명당임을 안 평양조씨(平壤趙氏)가 절을 폐허화시키고 그 자리에 묘를 썼으며, 현존하는 사찰은 1906년에 새로 세운 것이다. 18세기 후반 무렵 폐사되었으나 1980년 무렵에 중창되었고, 1982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용봉사 일주문
▲용봉사 마애불[龍鳳寺磨崖佛] 설명
▲용봉사 마애불[龍鳳寺磨崖佛]~충청남도유형문화재제118호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 신경리용봉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용봉사 마애불[龍鳳寺磨崖佛]~충청남도유형문화재제118호알림 문화재청비석
▲용봉사 마애불[龍鳳寺磨崖佛]~충청남도유형문화재제118호
▲용봉사 설명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이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현존하는 유물로 볼 때 백제 말기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용봉사에 1690년(숙종 16)에 조성한 괘불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무렵 사찰이 존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괘불은 영산회상도로서 제작년도가 분명하고 기법도 뛰어나 보물 제1262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사찰 서편의 조금 높은 곳에 있던 옛 절이 명당임을 안 평양조씨(平壤趙氏)가 절을 폐허화시키고 그 자리에 묘를 썼으며, 현존하는 사찰은 1906년에 새로 세운 것이다. 18세기 후반 무렵 폐사되었으나 1980년 무렵에 중창되었고, 1982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용봉사 [龍鳳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용봉사지 석조 설명
▲용봉사지 석조
▲용봉사지 석조
▲용봉사 적묵당~
▲용봉사 배롱나무, 약사여래불, 훼손된 석탑
▲용봉사 대웅전앞 새로조성된 석탑
▲용봉사 약사여래불
▲용봉사 대웅전
▲용봉사 대웅전 현판
▲용봉사 대웅전 내부~좌 대세지보살, 중앙 석가모니불. 우측-관세음보살
▲용봉사 삼성각
▲용봉사 삼성각내부
▲용봉사 영산회괘불탱설명(보물제1262호)
연꽃을 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보관(寶冠)에 각각 화불(化佛)과 정병(凈甁)을 모신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등의 8대보살은 모두 지물(持物: 부처, 보살, 천왕들이 손에 지니고 있는 물건)을 들고 있다. 제석천은 화관을 쓴 보살의 모습이며, 범천은 원유관(遠遊冠)을 쓰고 홀(忽)을 들었다. 이처럼 왕의 복장을 한 범천은 충청남도 장곡사 미륵불괘불탱(長谷寺彌勒佛掛佛幀, 1673년)에서 존명을 확인할 수 있다.
승복을 걸친 십대제자 중 백발의 가섭(迦葉)과 푸르스름하게 깍은 머리인 아난존자(阿難尊者)를 석가불 가까이에 배치하였다. 석가불의 두광(頭光: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 좌·우에 나타난 타방불(他方佛)은 불상의 머리 모양을 했으나 가사(袈娑)를 걸쳤다.
땅딸막한 체구의 사천왕은 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다문천왕(多聞天王)과 광목천왕(廣目天王)은 합장하고, 지국천왕(持國天王)은 검(劍),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다. 사천왕은 협시보살, 제석천과 범천 등의 권속보다 좀 더 작게 표현되었다.
녹색으로 바탕을 엷게 칠하고 밝고 부드러운 붉은색과 녹색을 위주로 하여 감색, 황색, 흰색, 검은색 등을 화사하게 배합했다. 법의(法衣: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의 둥근 보상화문과 금채(金彩)한 내의(內衣), 신광(身光: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의 보상화문이 화려하다. 불·보살상의 신체는 금채와 유사한 황색, 이외의 권속은 살색으로 처리되었고 뺨은 홍조를 띤 것처럼 표현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용봉사영산회괘불탱 [龍鳳寺靈山會掛佛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용봉사 지장전
▲용봉사 지장전 내부~지장보살
▲용봉사 지장전 내부
▲용봉사 경내 관세음보살상
▲용봉사 신경리마애여래입상(보물제355호)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55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 약 4m, 어깨 폭 1.4m.
큰 화강암의 전면을 파서 부조한 여래입상으로 머리는 소발이며 육계가 큼직하다. 길고 풍만한 얼굴에 작은 눈·코·입 등 매우 온화한 불두(佛頭)를 하고 있다. 귀는 어깨까지 내려오고 목은 거의 없으며 삼도(三道)는 가슴에 표현되었다. 신체는 얼굴에 비해서 매우 약화되었으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선이 약해졌다. 법의는 통견이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욱 세선(細線)으로 변하는 음각의(陰刻衣) 무늬는 도식화되고 혼란스럽다.
이 불상은 얼굴에 극적인 효과를 부여하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약식화한 고려 초기의 수법을 많이 따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홍성 신경리 마애석불 [洪城新耕里磨崖石佛] (두산백과)
▲용봉사 신경리마애여래입상(보물제355호)
▲용봉사 신경리마애여래입상(보물제355호)
▲용봉사 신경리마애여래입상(보물제355호)
▲용봉사 신경리마애여래입상(보물제355호)설명
▲수암산 삽교석조보살입상(보물제508호)설명
▲수암산 삽교석조보살입상(보물제508호)
머리에는 두건같은 관(冠)을 쓰고 있고, 그 위에 6각으로 된 갓 모양의 넙적한 돌을 올려 놓았다. 어깨의 윤곽은 아래로 내려가면서 조금씩 넓어지지만 양감이 전혀없이 밋밋하여 마치 돌기둥 같다. 왼손은 몸에 붙인채 아래로 내리고 있고,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려 돌지팡이같은 것을 잡고 있는데 양 발 사이까지 길게 내려오고 있다.
▲수암산 삽교석조보살입상(보물제508호)
이 불상은 2개의 돌을 조립하여 조상(彫像)한 대형으로 윗부분(복부) 이상은 굴러 떨어져 목이 부러졌으며, 복부 이하는 제자리에 남아 있다. 머리에는 장식이 없는 보관(寶冠)을 썼고 사각형의 얼굴은 평면적이다. 미소를 머금은 것 같으며, 귀는 큼직하며 길게 늘어졌다. 신체는 괴체적(塊體的)이어서 특색이 거의 없으며 천의(天衣)도 간략한 의문선(衣文線)만 표현하여 투박하다. 머리에 보개(寶蓋)를 얹었던 모양으로 6각형 개석이 떨어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예산 삽교 석조보살입상 [禮山揷橋石造菩薩立像] (두산백과)
▲수암산 삽교석조보살입상(보물제508호)
▲수암산 삽교석조보살입상(보물제508호)
▲수암산 삽교석조보살입상(보물제508호)
▲용봉산 석불사
▲용봉산 석불사 만물바위설명
▲용봉산 석불사 만물바위
▲용봉산 석불사 홍성상하리미륵불설명
▲ 홍성상하리미륵불(유형문화재제87호)
1979년 7월 3일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되었다. 거대한 자연석을 조각하여 만들었다. 소발(素髮)의 머리에 가늘고 긴 눈, 넓적하고 낮은 코, 작은 입 등이 비교적 평면적으로 부조(浮彫)되어 뚜렷한 양감은 없지만 입가에 표현된 희미한 미소는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얼굴에 부드러움을 더한다.
▲ 홍성상하리미륵불(유형문화재제87호)
몸체는 얼굴에 비해 짧은 편이다. 가슴 아래 나란히 놓인 두 손을 제외하면 조각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단순하게 표현되었다. 고려시대의 토속적인 지방양식이 잘 드러나며, 같은 방식으로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수법은 안동 이천동석불상(泥川洞石佛像), 파주 용미리석불상(龍尾里石佛像) 등 동시대의 불상에서 자주 보인다.
전체적으로 풍겨지는 토속적인 느낌은 관촉사(灌燭寺) 미륵보살입상이나, 대조사(大鳥寺) 석조미륵보살입상, 중원(中原) 미륵리석불입상 등 충청도 지방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거상(巨像)양식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 홍성상하리미륵불(유형문화재제87호)
▲ 홍성상하리미륵불(유형문화재제8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