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여행

여주신륵사

신용짱 2017. 12. 19.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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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12월19일 경기도 여주여행으로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에 위치한 천년고찰 神勒寺를 구경하고왔다

 

 ▲봉미산 신륵사 일주문

▲봉미산 신륵사 불이문

▲신륵사 세심정

▲신륵사 종고루

 신륵사 보호수 안내판

 신륵사 보호수 600년된 향나무

 

▲명부전 전각모습

冥府殿(명부전)의 冥府란 사람이 죽은 후에 가게되는 세계를 상징하고 명부전에는 사후세계의 심판관인 열명의 시왕(十王)이 봉안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시왕전(十王殿) 이라고 부르기도하며 지장보살이 주불로 봉안되어 있어 지장전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단의 구성은 지장보살을 중앙에 두고 좌측에 도명존자와 우측에 무독귀왕이 봉안되어 있고 좌우로 명부의 시왕들이 차례로 안치되어있으며 이밖에도 판관,녹사,장군등의 존상이 갖추어진 전각이다

시왕은 죽은자의 사후에 생전에 지은 죄와 선행을 심판하는 10명의 판관이며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염라대왕은 시왕가운데 다섯번째 판관이다

▲명부전 설명안내판

사람이 죽으면 그날부터 49일 안에 다른 세계로 태어나게 되는데 선망조상들과 부모님들이 극락왕생 하도록 천도재 및 기도를 지내고 있으며 명부전은 살아있는 후손과 조상을 위하여 부처님전에 복을 발원하는 전각이다

▲명부전~ 중앙 지장보살을 기준으로  좌측에 도명존자(사진에서는 우측).  우측에 무독귀왕(사진좌측)

▲명부전  좌측 시왕상(제10전대왕부터 짝수 제2전대왕)과 파관 녹사~~좌측에는 짝수시왕

▲명부전 시왕상중 좌측 부터 ~ 제10전 오도전륜대왕전 설명

▲명부전 시왕상중 좌측 부터 ~ 제10전 오도전륜대왕전

시왕상중 마지막왕으로 명도에서 망3회기의 일을 맞고있다  이관중 옥사를 거느리고  중생의 어리석음과 번뇌를  다스리는 왕인데  망인은 죽은후  여러왕을 거치며 그 죄를 심판받고 최후로 오도전륜대왕 앞에 이르러 다시 태어나게될 곳을 결정하게된다고 한다

▲명부전 시왕상중 좌측 부터 ~ 제8전 평등대왕전 설명

▲명부전 시왕상중 좌측 부터 ~ 제8전 평등대왕전

명도에 살며 망인 사후에 백일의 일을 관장하는 왕으로 팔할팔열 지옥의 사자와 옥졸을 거느린다 평등하게 죄와 복의 업을 다스린다는 뜻에서 평등왕 또는 평정왕 이라고도 한다

 

▲명부전 시왕상중 좌측 부터 ~ 제6전 변성대왕전  설명

▲명부전 시왕상중 좌측 부터 ~ 제6전 변성대왕전

명도에서  망인 육칠일의 일을 관장하는 왕으로 변성왕이라고도 한다  앞의 오관대왕과 염라대왕 앞에서 업칭,업경에 의해 재판을 받고도 죄가 남은 사람이 있으면 지옥에 보내 벌을 받게 하는 일을 맡으며 사람에게 악을 폐지하고 선을 관장하는 명관이다

▲명부전 시왕상중 좌측 부터 ~ 제4전 오관대왕전  설명

▲명부전 시왕상중 좌측 부터 ~ 제4전 오관대왕전

명도에서 오형을 주관하는 왕으로 망인 사칠일의 일을 맡아 본다,  새강 사이에 큰 궁전을 짓고 중생들의 망어의 죄를 다스린다  업칭에 사람들의 죄업을 달아서 그 경중에 따라 벌을 내리는 일을 하는 대왕이다

▲명부전 시왕상중 좌측 부터 ~ 제2전 초강대왕전  설명

▲명부전 시왕상중 좌측 부터 ~ 제2전 초강대왕전

시왕중 둘째 왕으로 명도에서 망인 2. 7일(14일)의 일을 맡은 왕 이다, 초강가에 관청을 세우고 망인의 도하를 감시함으로 초강왕이라고 사람이 죽은 후 진관와의 처소 에서 7일을 보내고 죽은 14일 만에 나하진 이라고 하는 큰 강을 건너서  초강왕의 관청앞에 다다른다고  한다.

▲명부전 시왕상중 우측 시왕상   제1전대왕~제9전대왕

▲명부전 시왕상중 우측 부터 ~ 제1전 진광대왕전  설명

▲명부전 시왕상중 우측 첫번째 ~ 제1전 진광대왕전

시왕중 첫번쩨 왕으로 명도에서 초칠일의 일을 관장하는관청의 명관이다. 여러 관리들을 거느리고 망인을 질책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악을폐하고 선을 닦게하는 일을 맡은 왕으로 망인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업에 따라 죽은 후 7일째  되는 날에 이 대왕 앞에 나아가 죄업의 다스림을 받는다

 

▲명부전 시왕상중 우측 2번째 ~ 제3전 송제대왕전  설명


▲명부전 시왕상중 지장봘로 부터 우측 2번째 ~ 제3전 송제대왕전

명도에 살며 삼칠일의 일을 관장하는 왕 이다.  대해의 동남 옥초석 밑의 대지옥에 거주하면서 대지옥 안에 별도로 16지옥을 두어 경중에 따라 죄인을 각 지옥으로 보내는 일을 맡으며, 주로 사람들의 사음을 다스린다

▲명부전 시왕상중 우측 세번째  ~ 제5전 염라대왕전  설명

▲명부전 시왕상중 지장보살로부터  우측3번째  ~ 제5전 염라대왕전

시왕중 다섯번째왕으로 야마,염마, 등으로 불리며 명도에서 망인의 오칠일의 일을 관장하는 왕으로 염라대왕이라고 한다 ,   염라대왕 청에는 업경이 있어 죄인들의  생전의 죄를 비추어 그에 따라 벌을 준다고 한다,

▲명부전 시왕상중 우측  네번째 ~ 제7전 태산대왕전  설명

▲명부전 시왕상중  지장보살로부터  우측 네번째 ~ 제7전 태산대왕전

일명 태산대왕이라고 하며, 명도에서 망인 칠칠일의 일을 관장하는 왕으로 염라대왕의 서기 이며 인간의 선악을 기록하여 죄인의 태어날 곳을 정한다고 한다,  즉 이 왕 앞에는 지옥, 아귀, 축생, 수라,인,천,등 육도가 있어 그 죄업에 따라 태어나는 곳 혹은 지옥에 보내는일을 정하는 왕이라고 한다

▲명부전 시왕상중 ~ 제9전 도시대왕전  설명

▲명부전 시왕상중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우측   마지막 ~ 제9전 도시대왕전

명도에 망인 1주기의 일을 관장하는 왕이다 ,  도제왕 또는 도조왕 이라고도 하며  사람들에게 법화경 및 아미타불 조성의 공덕을 말해주는 왕 이라고도 한다

 

 ▲봉송각(奉送閣)~이곳은 사십구재 ,또는 기타의 재를 모신 후 떠나 가시는 영가님들을 극락세계에 태어나시도록 마지막 전송하는 전각이라고 한다

이 불사에 동참하신 모든 분들의 공덕이 일체의 중생에 널리 퍼져 극락세계에 환생하고 무량수불에 수기를 받고 불도를 닦아 성불할 지이다 

 ▲봉송각(奉送閣)설명

 ▲승탑 경기도 "유형문화재자료 제134호 여주 신륵사 원구형석조승탑" 설명

  ▲승탑 경기도 "유형문화재자료 제134호 여주 신륵사 원구형석조승탑"

  ▲승탑 경기도 "유형문화재자료 제195호 여주 신륵사 팔각원단형석조승탑" 설명

 

 ▲승탑 경기도 "유형문화재자료 제195호 여주 신륵사 팔각원단형석조승탑"

 ▲보물제180호 여주신륵사 조사당  설명

 

  ▲보물제180호 여주신륵사 조사당 삼화상진영

  ▲경기도 유형문화재167호 여주신륵사 조사당 삼화상진영 설명

   ▲경기도 유형문화재277호 여주신륵사 조사당  건륭삼십칠년동종 설명

    ▲경기도 유형문화재277호 여주신륵사 조사당  건륭삼십칠년동종

  ▲보물제258호 여주신륵사 보제존자석종,보물제231호 여주신륵사 보제존자석종앞석등 설명

  ▲보물제258호 여주신륵사 보제존자석종

 

 

  ▲보물제231호 여주신륵사 보제존자석종앞 석등

  ▲보물제228호 여주신륵사 보제존자석종,보물제229호 여주신륵사보제존자석종비,보물제231호 여주신륵사보제존사석종앞 석등  설명판

  ▲보물제229호 여주신륵사보제존자석종비

  ▲여주신륵사 적묵당

  ▲보물제225호 여주신륵사 다층석탑

 ▲보물제225호 여주신륵사 다층석탑  설명

 ▲경기도유형문화재제128호 여주신륵사 극락보전

 

  ▲경기도유형문화재제128호 여주신륵사 극락보전  설명

  ▲경기도유형문화재제278호 여주신륵사 극락보전 삼장보살도 설명

 ▲보물제1791호 여주신륵사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설명

  ▲보물제1791호 여주신륵사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경기도유형문화재제228호 여주신륵사 극락보전  삼장보살도

 

 ▲봉미산 신륵사  구룡루 안쪽  편액

 

 

 ▲여주신륵사 구룡루

 ▲여주신륵사  은행나무

 ▲여주신륵사 은행나무에 오신 관세음보살님 설명

  ▲여주신륵사 은행나무에 오신 관세음보살님을  똑같이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보물제226호 여주신륵사 다층전탑 설명

 ▲보물제226호 여주신륵사 다층전탑

 ▲보물제226호 여주신륵사 다층전탑

 ▲보물제230호 여주신륵사 대장각비 설명

  ▲보물제230호 여주신륵사 대장각비각

  ▲보물제230호 여주신륵사 대장각비

  ▲보물제230호 여주신륵사 대장각비

  ▲보물제230호 여주신륵사 대장각비 해석판

 ▲보물제226호 여주신륵사 다층전탑에서  인증샷

 ▲보물제226호 여주신륵사 다층전탑


오늘 구경을 마친 여주신륵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로. 신라 진평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고한다. 절이름을 ‘신륵’이라고 한 데는 미륵(彌勒) 또는 왕사 나옹(懶翁)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전설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리고 고려 고종 때 건너편 마을에 나타난 용마가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웠으므로 사람들이 잡을 수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제압하였다고 하여 절이름을 신륵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한 이 절은 고려 때부터 벽절[甓寺]이라고도 불렸다. 이는 경내의 동대(東臺) 위에 다층전탑이 있는데, 이 탑 전체를 벽돌[塼]로 쌓아 올린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절이 대찰을 이루게 된 것은 나옹이 이곳에서 갖가지 이적을 보이면서 입적(入寂)하였기 때문이다. 나옹이 입적할 때 오색 구름이 산마루를 덮고, 구름도 없는 하늘에서 비가 내렸으며, 수많은 사리가 나왔고, 용(龍)이 호상(護喪: 초상 치르는 모든 일을 주장하여 보살피는 것)을 했던 일들이 그것이다. 3개월 뒤인 1376년(우왕 2) 8월 15일에 절의 북쪽 언덕에 정골사리(頂骨舍利)를 봉안한 부도를 세우는 한편 대대적인 중창이 함께 이루어졌다.

이때 대전(大殿)·조당(祖堂)·승당(僧堂)·선당(禪堂)·종루(鐘樓)·동익당(東翼堂)·서익당(西翼堂)·남행랑(南行廊)·향적당(香積堂) 등의 많은 건물이 신축되거나 중수되었다. 그리고 나옹의 진영(眞影)을 모시는 선각진당(禪覺眞堂)도 건립되었다.

또, 1382년에는 2층으로 된 대장각(大藏閣)이 건립되면서 간행한 대장경 1부를 봉안하였다. 대장경 불사(佛事)를 발원한 것은 이색(李穡)의 아버지인 이곡(李穀)이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이색이 그 뜻을 계승하여 나옹의 제자들과 함께 간행하였다. 신륵사의 승려 무급(無及)과 수봉(琇峯)이 중심이 되고 그 제자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시주를 모았는데, 200여 명이 이 불사에 참여하였다.

이 중에는 각운(覺雲)·신조(神照)·자초(自超) 등의 고승들과 최영(崔瑩)·조민수(曺敏修)·최무선(崔茂宣) 등의 이름이 나타나고 있다. 1381년에 각주(覺珠)가 금자(金字)로 제목을 쓰고 각봉(覺峯)은 황복(黃複)을 만들었으며, 12월에 성공(性空)이 함을 만든 뒤 1382년 정월에 화엄종 소속 사찰인 영통사(靈通寺)에서 교열한 다음 4월에 배에 실어 신륵사에 봉안하였다.

또한, 대장각 안에는 대장경과 함께 권희(權僖)가 조성한 비로자나불상(毘盧遮那佛像)과 홍의룡(洪義龍)이 죽은 딸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조성한 보현보살상(普賢菩薩像), 그리고 강부인(姜夫人)이 시주를 얻어 조성한 문수보살상(文殊菩薩像)을 봉안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배불정책으로 이 절 또한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나 광주의 대모산(大母山)에 있던 영릉(英陵 : 세종의 능)이 여주로 이장된 1469년(예종 1)부터 왕실에서 신륵사를 영릉의 원찰(願刹)로 삼을 것을 결정하였고, 1472년(성종 3) 2월에 대규모 중창불사가 시작되어 8개월 만에 200여 칸의 건물을 보수 또는 신축하였다. 그 이듬해 대왕대비는 신륵사를 보은사(報恩寺)라고 개칭하였다.

그 뒤 이 절은 사대부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 전락했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병화로 폐허가 되었다. 1671년(현종 12)에는 계헌(戒軒)이 중건하였고, 1700년(숙종 26)에는 위학(偉學)과 그의 제자 우안(宇眼)·천심(天心) 등이 삼존상을 중수했으며, 이어서 1702년에도 중수하였다. 1726년(영조 2)에는 영순(英淳) 등이 동대에 있는 전탑을 중수했는데, 당시에 세웠던 비가 지금도 남아 있다.

1796년(정조 20) 영돈녕 김이소(金履素)와 예조판서 민종현(閔鍾顯) 등이 중수를 시작하여 이듬해 범중각(泛中閣)·식당을 지었으며, 가자첩(嘉資帖) 50여 장을 하사받았다. 1858년(철종 9)에는 순원왕후(純元王后)가 내탕전(內帑錢)을 희사하여 불전(佛殿)·선료(禪寮)·종루 등을 중수하였고, 1929년에는 주지 성인(性仁)이 명부전(冥府殿)을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금당(金堂)인 극락보전(極樂寶殿)을 중심으로 하여 조사당(祖師堂)·명부전·심검당(尋劍堂)·적묵당(寂默堂)·봉향각(奉香閣)·칠성각(七星閣)·종각(鐘閣)·구룡루(九龍樓)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다포집으로 1797년(정조 21)에 시작하여 1800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내부에는 목조아미타삼존불을 봉안하였고, 1900년에 그린 후불탱화·신중탱화·감로탱화와 1908년에 조성한 지장탱화가 있으며, 1773년(영조 49)에 주조한 범종(梵鐘)이 있다. 그리고 극락보전 정문 위에는 ‘千秋萬歲(천추만세)’라고 쓴 현판이 있는데, 나옹의 친필이라고 구전되고 있다. 이 현판은 입체감을 나타내고 있어 보는 위치에 따라 글씨가 달라 보이는 특이함이 있다.

보물 제180호로 지정된 조사당은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중앙에 나옹, 좌우에 지공(指空)과 무학(無學)의 영정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정면 3칸의 맞배집인 명부전 내부에는 목조지장삼존(木造地藏三尊)을 비롯하여 시왕상(十王像)과 판관(判官) 등 총 29구의 상이 봉안되어 있다.

적묵당은 선원(禪院) 구실을 한 건물이고, 심검당은 강원(講院) 구실을 하는 정면 6칸의 ㄱ자형 건물로 선각당(禪覺堂)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심검당 바로 옆에는 극락보전의 분수승(焚修僧)이 거처하는 3칸의 봉향각이 있고, 봉향각 뒤쪽에는 칠성탱화와 산신탱화·독성탱화가 봉안된 칠성각이 있다.

이 밖에도 신륵사에는 보물 제225호로 지정된 대리석재의 다층석탑, 국내에서 유일하게 완성된 형태로 남아 있는 전탑인 보물 제226호의 다층전탑(多層塼塔), 고려 말기의 대표적 부도양식을 띤 보물 제228호의 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 비천(飛天)과 용이 새겨져 그 형태가 매우 아름다운 보물 제231호의 석등, 1379년 나옹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보물 제229호의 보제존자석종비(普濟尊者石鐘碑), 이색과 나옹의 제자들이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대장각을 세운 연유를 기록한 보물 제230호의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가 있다.

이 밖에도 절의 동쪽 강변 바위 위에는 삼층석탑이 있고, 경내의 서쪽 언덕에는 부도 2기가 있다. 삼층석탑은 나옹을 화장한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탑이고, 부도는 원래 조사당 뒤쪽에 있던 것을 1966년 11월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나 누구의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들 부도 중 둥근 탑신을 가진 부도는 근세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8각 탑신을 가진 부도는 고려시대의 부도형식에서 퇴화된 여말선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이전할 때 사리함이 발견되어 현재 동국대학교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또한, 나옹의 화장지에 세워진 삼층석탑 옆에는 강월헌(江月軒)이라는 6각의 정자가 있다. 그 전에 지어진 것은 1972년의 홍수로 떠내려가고, 그 뒤 삼층석탑보다 조금 아래쪽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 누각의 이름인 강월헌은 나옹의 당호인데, 그를 추념하여 이곳에 누각을 세운 것이다. 또한 구룡루는 1689년(숙종 15)과 1749년(영조 25), 1860년(철종 11)에 각각 중수된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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