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 묘

漣川 敬順王陵(연천 경순왕릉)

신용짱 2016. 11. 24.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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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11월24일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산18-2번지에 위치한 신라 경순왕릉을 방문하였다

사적 제244호로  1975년6월25일에 지정되었다고 한다

경순왕릉의 이곳저곳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경순왕릉 능상과  능표

▲경순왕릉   능표 ~ 능표의 전면에는 신라경순왕지능(新羅敬順王之陵)이라는 7자가 기록되어있고  후면에는 다음과같이 5행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王新羅第五十六王後唐天成二年戊子代景哀王

而立淸泰乙未遜國干高麗宋太平興國戊寅麗景

宗三年四月四日횡諡敬順以王禮葬干長湍古府

南八里癸坐之原

至行純德英謨毅烈聖上二十三年丁卯月日改立

(풀이)~왕(경순왕)은 신라제56대 왕으로 후당 천성 2년 무자(928년)에 경애왕의 대를이어 왕위에 오르셨고, 청태 을미년(935년)에 나라를 고려에 넘겨주셨다. 송 태평흥국 무인년(978년) 즉 고려 경종3년4월4일 세상을 떠나시니 시호는 경순이라 하고 왕의 예로 장단 남쪽 고부8리 계좌 방향의 언덕에 장사 지냈다.

지행순덕영모의열(영조의존호) 성상 23년 정묘년(1747년) 월일에 다시 세우다

▲경순왕릉 석양:~능주인의  명복을 빌고 귀신이나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역할을 한다고 믿어  세움

▲경순왕릉 장명등:~ 일반적으로 돌아가신이의 명복을 빌기위해 무덤앞에 세움

▲경순왕릉 망주석:~먼 곳에서 능을 쉽게 알수있도록 하는 표지로서 영혼이 자기의 유택을 찿아오게 하는 안내의 역할을 한다고함

▲경순왕릉 능상과 곡장  장명등  망주석   전경

▲경순왕릉 능상과  능표 곡장  장명등  망주석  석양  전경


▲경순왕릉 안내도

▲경순왕릉 신도비각

▲경순왕릉 신도비 앞면:~ 경순왕릉 신도비라고 추정되는 이비는 원래 고량포구 주변에 방치되어 있던것으로 1976년 고랑포 초등학교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1748년(영조24)후손들이 발견한 신도비로 추정하여 1986년 비각을 짓고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비의 마모상태가 심하여 현재 한쪽 면에서만 몇 개의 문자만 판독될 정도여서 내용은 전혀 알수 없다, 비석의 건립연대는 모르지만 비석의 형태로보아 조선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경순왕릉 신도비~  추정 뒷면

▲경순왕릉   방문  인증샷을 남겨봅니다

▲경순왕릉 재실


▲경순왕릉 주차장에 세워진 신라 경순왕릉 알림 글자

▲경순왕릉 주차장에 있는 신라경순왕릉사적제 244호 설명판

▲경순왕릉 능표  탁본 설명

▲경순왕릉 설명

▲신라 경순왕릉(사적제244호)진입로  풍경


新羅 敬順王
신라 경순왕은 제56대 신라의 마지막왕(927~935재위)으로 성은 김(金),이름은 부(傅)이다  신라 문성왕의 후손으로 927년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후 왕위에 올랐다  경순왕이 왕위에 오를 당시에는 국가가 후백제,고려,신라로 분열되어 있었고 특히 후백제의 잦은 침입과 각 지방 호족들의 할거로 국가 기능이 마비되는 상태였다, 이에 민심도 신흥 고려로 기울어 지자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는것을 막기 위해 신하들과 큰아들 일(鎰)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려 왕건에게 평화적으로 나라를 넘겨준 후 왕위에서 물러났다, 이후 태자 일은 금강산으로 들어가 마의(麻衣)를 입고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으면서 보냈다고 하여 후일 일명 마의태자라고 불린다
고려에 나라를 귀부한 경순왕은 태자보다 높은 지위인 정승공에 봉해지는 한편 유화궁을 하사받고 경주를 식읍(食邑)으로 받아 최초의  사심관(事審官)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었으며 귀부한지 43년 후인 978년(고려 경종3년)에 세상을 떠났다
비보를 접한 신라 유민들이 장사진을 이루며 경주에 장례를 모시고자 하였으나 고려조정에서 왕의 구(柩)는 백리 밖으로 나갈수 없다 하여 이 곳 장단부 고량포리 성거산에 왕의 예로 장례를 모셨다함

敬順王陵

순왕릉은 신라의 여러 왕릉중  유일하게 경주를 벗어나  있는 것으로 고랑포 나루터 뒤편의 남방한계선과 인접한 나지막한 구릉의 정상부 쪽에 단독으로 위치하고있다.  경순왕의 사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졌던 것을 1747년(조선영조23) 후손들이 왕릉주변에서 묘지석을 발견함으로써 되찿게 되었다. 따라서 경순왕릉은 조선후기의 양식으로 재정비되어 오늘날 에 이르고 있으며 봄과 가을 두차례에 걸쳐 제례가 행해지고있다, 경순왕릉 주변에는 1986년 건립된 정면3칸 측면1칸 맞배 지붕의 재실건물과 경순왕릉의 것으로 추정된는 비가 비각 안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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