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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6일 북한산국립공원 #노적사 와 #태고사 산행겸 트레킹 을 다녀왔다
🔶️산행코스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 대서문 ~ 북한산동역사관 ~ 선봉사 ~ 법용사 ~ 중성문 ~ 노적사 ~ 부황사갈림길 ~ 산영루 ~ 부흥사 ~ 태고사 ~ 원증국사탑 ~ 원점하산
🔶️운동거리/시간 : 왕복 약7.2km / 2시간 30분
🔶️누구와 : 나홀로
🔶️날씨,온도 : 산행내내 비, 온도 4~6도
⬇️ 노적사 대웅전

⬇️북한산 탐방안내소

⬇️북한산성 대서문

⬇️북한산 무량사

⬇️북한산동 역사관

⬇️북한산 선봉사


⬇️북한산 법용사 - 국녕사 갈림길


⬇️북한산성 중성문
중성문(中域門)
북한산의 노적봉과 증취봉 사이의 협곡에 쌓은 중성에 설치된 성문이다. 대서문에서 이곳예 이르는 지역은 지형이 비교격 평탄해 적의 공격에 취약한 구역이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곳에 적의 공격을 이중으로 방어할 수 있는 차단성인 중성을 쌓았다. 중성 안쪽은 북한산성의 내성에 해당되는데 이 내성에 행궁 중흥사 상창 등의 주요 시설이 집중되어 있었다, 중성문의 수비를 담당했던 부대는 대서문과 대남문의 수비를 맡았던 어영청 유영이었다 현재의 증성문은 석축기단인 육축부, 그 위에 올려긴 문루 무지개 모양의 출입구인 홍예문을 갖춘 전형적인 대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흥에 양쪽에 문루의 배수시설인 누혈이 하나씩 설치되어있다 바깥과 홍애 안쪽에는 문짝을 달았먼 원형의 지도릿돌과 장군목을 걸쳤면 방향의 구멍이 남아있다
규모는 대서문보다 조금 작은 편이다. 문루는 1998년 복원했는데 1998년에 복원한 대서문의 문루보다 40년이 늦어 복원기술의 변화를 엿붙 수 있다
중성문 옆의 암반에 폭 2.1m. 높이 1.8m 규모의 작은 암문이 숨겨져 있다. 이 암문은 원래 이름이 없었으나 성 안에서 생긴 시신이 중성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이 문을 통해 나간다고 해 시구문 이라 불렀다. 한편 증성문 바로 옆을 흐르는 계곡에는 수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북한산 노적사 입구





⬇️북한산 노적사

#노적사 (露積寺) 는 조선 숙종 38년(1712년) 때에 북한산성 축성 이후 산성의 수비를 위해 창건된 13개 사찰들 중 하나인 진국사이다








⬇️북한산 대남문 가는길 쉼터


⬇️북한산성 정비군 비석

⬇️북한산 산영루

⬇️북한산성선정비군(北漢山城善政碑群(
이곳의 비석들은 북한산성 관리의 최고 책임자가 재임할 당시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선정비로 현재 26기 정도 남아 있다. 비석을 세위 비문을 기록한 선정비가 대부분이고 따로 비석을 세우지 않교 암벽에 비문을 새긴 선정비도 있다 이들 선정비의 건립 시기는 모두 19세기인데 이시기 복한사성의 관리는 좋융청 과 무위소가 맡고 있었다. 이에 비문에는 해당 관청의 관리책임자였던 총융사와 무위소 제조 경리사의 선정을 기리고 있다

⬇️북한승도절목 암각문
북한승도절목 (北漢僧徒節目)
이 암각문은 1 955 년 철종 6에 새긴 북한승도절목 으로 모두 325자이다. 명문에는 승병대장인 총섭울 임명할때 예상되는 페단을 없애기 위한 규약 3가지를 제시해 놓았다 이를 통해 승영사찰이 피폐하여 승도가 흩어지고 있었던 사실과 그 원안이 총섭의 부적절한 임명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때를 전후하여 산성 밖의 승려가 총섭에 임용되기 시작한 것과. 불공평한 임용을 막기 위하여 대수결의 비밀 투표를 요구했던 사실도 파악할 수 있다


⬇️ 산영루

추사 김정희의 북한산 여정 산영루(山映樓)
游客住筇古樹間
亂流爭響夕陽山
此亭自古稱勝地
徙倚華欄憺忘還
고목 숲속에서 나그네 발걸음을 멈추면 어지런 물결이 석양 저문 산을 울린다 예부터 명승지로 알려진 이 정자에 올라, 꽃난간 기대서니 편히 돌아가길 잊게 되네
(삼각산기행시 1편 중에서)

경기도 문화유산 산영루는 북한산성내
위치한 대표적인 누각입니다. 당대의 수많은 문인들이 사랑했던 곳으로 여러 시문들을 남긴 장소입니다. 특히 추사 김정희는 산영루를 사랑하여 삼각산기행시축 에 1편, 완당전집에 3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위 시는 젊은시절 추사가 아버지와 함께 산영루를유람하며 그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입니다
자료제공 한국산서회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 태고사

태고사
Tae-go-sa
고려 말기의 대표적인 선승이자 왕사·국사를 지낸 태고 보우太古 普愚, 1301~1382가 창건한 사찰이다. 보우는 중흥사를 중창하고 그 동편에 암자를 지어 5년간 머물렀는데, 이 암자가 바로 지금의 태고사이다. 고려 멸망 이후 거의 폐허가 되었으나, 북한산성 축조와 함께 승병이 주둔하는 승영사찰로 1713년에 중창되었다. 이 절을 중창한 성능대사가 지은『북한지」(北漢誌, 1745년 간행)에는 "태고사의 규모는 131칸에 이르며, 경내에는 서적 출판용 목판 5700여 매와 활자 11두의, 화약용 흑탄 1,600여 석을 비축하였다."고 전한다.현재 태고사에는 지정문화재로 보우의 행적을 기록한 원증국사탑비圖證國師塔碑, 보물 제611호와 그의 사리탑인 원증국사탑圖證國師塔, 보물 제749호이 있으며,비지정문화재로 조선 후기 양식의 사리탑이 다수 남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1910년대까지 경내에 5층 석탑이 남아 있었고, 서산대사 휴정休靜이 지은 시를 새긴 현액과 영조가 직접 쓴 현액이 걸려 있었다고 전한다




⬇️ 태고사 원증국사탑비

중흥사에서 후학을 지도하면서 이곳 태고사를 창건하여 5년간 머물렀던 원증국사 보우의 행적과 업적을 새긴 탑비이다
원증국사1301~1382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호는 태고이다 13세에 회암사로 출가하여 26세에 화엄선에 합격하였다. 1346년 충목왕 2에 원나라에 가서 선종의 일파인 임제종의 법손 청공 밑에서 공부하고 그 법을 받아 귀국했다. 그 후 공민왕의 왕사가 되었으며. 한때 신돈과 대립하다가 속리신에 금고 되기도 했으나 신돈이 죽은 후 국사가 되었다. 그를 따르는 승려가 1.000여 명에 이르고, 당대의 대신이었던 최영과 이성계가 그의 제자로 비문에 적혀 있을 정도로 고려 말기 불교계의 거목이었다, 보조국사 지늘1158~1210과 함께 한국불교의 초석을 다진 고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원중국사탑비는 1385년고려 우왕 11에 건립되었다. 당대의 문장가 이색이 비문을 짓고 명필인 권주가 글씨를 썼다. 전체적으로 보아 탑비의 조각이 형식에 그치고 있어 퇴화된 느낌을 준다




⬇️ 태고사 산영각



⬇️ 고양태고사원증국사탑 (高陽太古寺圓證國塔)-보물

高陽太古寺圓證國塔
고려 후기의 승려인 원증국사 보우(82세)의 사리탑이다. 보우의 법호는 태고이며 왕사 . 국사를 거쳐 82세로 입적하여 이곳에 사리답을 세우고 이를 '보월승공 이라 하여 영골을 이곳에 모셨다 사리는 이곳만이 아니라 양신사 사나사: 청송사 등에 나누어 봉만하였다 이에 보우의 또 다른 사리탑이 경기도 양평의 사나사에 있어 경기도 유행문화재 제7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원증국사탑의 행태는 3단으로 이루어진 기단 위로 탑신을 올린후 독특한 모습의 머리장식을 얹었다 원형의 답신 몸돌은 위쪽이 좁아저서 지봉들 밀면에 들어맛게 되어있다. 고양 대고사 원증국사탑비 보물 제611호의 건립이 1385년 우왕 11년 이므로 이 사리답은 그 이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 하산길

⬇️ 하산길 중성문

⬇️ 하산길 대서문

⬇️ 하산길 북한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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