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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5일(목) 북한산국립공원 金仙寺 木精窟 을 찿아갔다,
⬇️三角山 金仙寺 木精窟

⬇️三角山 金仙寺 木精窟 입구 표석


⬇️三角山 金仙寺 木精窟 오름길 풍경




三角山 金仙寺 木精窟(목정굴)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각산(三角山)에 있는 대한제국기 불교 관련 수행굴.

⬇️三角山 金仙寺 木精窟 내부
三角山 金仙寺 木精窟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각산(三角山)에 있는 대한제국기 불교 관련 수행굴.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인 금선암(金仙庵) 곁에 있다. 조선 제23대 순조의 탄생과 인연을 지닌 곳이다.
정조 때의 고승 농산(聾山)은 수십 년 동안 산 속에서만 수도하였는데, 저위(儲位 : 왕세자)가 없어 걱정하는 정조의 부탁을 받고 이 굴에서 왕자의 탄생을 위한 백일기도를 하였다.
기도가 끝나는 날에 왕실에서는 한 봉서(封書)를 얻었는데, 봉서에는 “경술(1790) 6월 18일 모시 왕세자탄강”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는 순조의 탄생을 예견한 것이었다.
그 날 이상스러운 기운의 붉은 빛이 감도는 무지개가 서북쪽으로부터 옮겨와 산실을 감싸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청약원(廳藥院)에서 사람을 시켜 그 빛의 자취를 좇았더니 목정굴의 제단 위에서 나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 노승이 가사를 걸치고 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빛은 노승의 이마에서 나오고 있었지만 이미 입적(入寂)한 뒤였다고 한다.
정조는 내수사에 명하여 석굴 위에 절을 짓도록 하고, 김홍도(金弘道)에게 명하여 농산의 상을 그리게 하여 공양하게 하였다

⬇️金仙寺 木精窟 입구 폭포


⬇️ 木精窟 설명 안내판

⬇️三角山 金仙寺 이정목

⬇️ 金仙寺 안내

금선사 는 고려와 조선의 왕조 교체기 때 무학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무학대사는 조선의 도읍을 정하고자 삼각산을 살피던 중, 지금의 금선사 터에 삼각산의 정기가 서려있고. 부처님이 상주하시며 중생들을 제도하는 형상과 감각으로 절을 짓고, 금선사 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목정굴이 관음기도성지로 알려졌다. 또한 금선사 농산 스님이 정조의 왕세자인 순조로 환행하였다는 설도 전해지는데, 이를 계기로 1791년 정조의 명으로 원찰 이 되기도 하였다. 설화에 의하면 금선사의 농산스님은 조선후기 사찰에 가해지는 각종 국역에 의해 피페해지는 불교를 구해낸 인물로 묘사되어 있어 사찰의 규모는 작아도 위상이 높았음을 알수 있다. 더불어 금선사는 조선후기 사대부 문인들(신정하, 조수삼, 박규수 등)과 스님들이 활발하게 교유한 장으로도. 가능하었다, 특히 추사 김정회의 아우 김명희와 초의스님과의 교유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창건 이래로 신령한 기운과 문학이 숨쉬는 명찰로 법등을 있다가 일제강점기에 관리소흘로 인하여 퇴락하게 되었다, 이후 1957년에 이를 안타깝게 여긴 도공 스님이 옛터에 중건하고, 법안 스님이 주석하며 1996년에 독정굴을 복원한것을 필두로 대적팡전, 삼성각, 반야전, 미타전, 설선당, 적묵당, 범종루 등의 각 전각과 요사를 신증축하여 현제 가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三角山 金仙寺 일주문

⬇️三角山 金仙寺 풍경










⬇️三角山 金仙寺 대적광전



⬇️三角山 金仙寺 상성각

⬇️三角山 金仙寺 경내로 흐르는 계곡풍경


⬇️三角山 金仙寺 대적광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