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8월4일 무더위속 가족여행겸 여름휴가중 송광사를 구경하고왔다
▲송광사 일주문
▲송광사 사천왕문을 통과하고나서 뒤돌아본 사천왕문입니다
▲송광사 시자루~부속건물 이곳저곳도 카메라에 담아보는데요 사진촬영금지라고되어있고 출입금지구역이 많네요
▲송광사 부속건물 시자루~
승보종찰답게 건물마다 스님들이 열심히 불경을 외고있는모습이 더욱 경건한 마음을 갖게합니다
▲이곳은 사찰의 큰종과 북을 보관하고있는 종고루입니다
▲송광사 종고루
▲드디어 송광사의 중심 건물인 대웅보전입니다
▲송광사 대웅보전~이곳에도 역시 많은스님들이 예불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대웅보전을 오르는 계단의 용머리 석물
▲대웅보전 내부의 모습도 조용히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송광사 하사당 "보물제263호"
▲송광사 하사당 "보물제263호"
하사당은 스님들이 사용하던 건물로 대웅전 뒤 한층 높은 곳에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왼쪽 2칸이 툇마루를 갖춘 온돌방이고 오른쪽 1칸은 부엌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며,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고 장식을 겸하는 간결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다. 부엌 지붕 위로 네모 구멍을 내고 조그만 환기구를 만들었는데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시설이다.
이 건물은 조선 전기 스님들이 생활하는 승방(僧房) 건축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장전입니다
▲지장전~ 내부모습입니다
▲승보종찰답게 승보전이 있는것이 특이합니다~승보전은 송광사에만 있는것같네요 다른곳에서는 본적이없읍니다
▲승보전 내부도 카메라에 담아봅니다~주불이 부처님이고 나머지 수많은 불상은 부처님의 제자들로 여겨지네요
▲관음전~ 관음전의 건물도 세월이 오래됨을 척보아도 알겠네요~ 문화재청 안내판이 없는것이 아쉽네요
▲관음전 현판과 오래된 단청모습
▲관음전 내부~보물제1660호목조관음보살좌상
▲관음전 내부~보물제1660호목조관음보살좌상
보물제1660호 송광사 관음전의 목조관음보살좌상
송광사 관음전의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복장되어 있던 저고리와 별도의 백색비단에 적은 발원문을 통해 1662년 궁중나인(宮中內人) 노예성(盧禮成)이 경안군(慶安君) 내외의 수명장원(壽命長遠)을 위해 발원하고, 경안군 내외와 나인 노예성, 박씨, 당대의 고승(高僧) 취미수초(翠微守初) 등이 시주하여 17세기 중엽을 대표하는 조각승 혜희(慧熙)와 금문(金文)이 조각하여 조성한 관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발원문을 통해 경안군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던 나인 노예성이 경안군의 수명장원을 위해 발원 조성한 관음보살상이라는 데 그 역사적 의미가 크며, 특히 경안군의 것으로 추정되는 쪽빛 저고리 안쪽 면에 적힌 발원문은 당시 정세의 일 단면을 읽을 수 있는 함축적인 메시지가 담겨있어 이 상의 사료적 가치를 더 해주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이 관음보살좌상은 1662년이라는 제작시기와 조성주체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불상의 양식적 특징인 대중적인 평담한 미의식이 농후하게 반영된 가운데, 이 시기 불상중에서도 비교적 높은 조각적 완성도를 보인다. 한편 강인한 인상에서 오는 높은 정신성, 장엄이 강조된 독특한 착의형식, 역동적인 힘이 강조된 신체의 형태미 등은 조각승 혜희의 유파적 특징이여서 17세기 본격화된 조각유파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 발견된 복장유물과 함께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되었다.
한편, 섬유류의 유물이 존속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기후․환경 조건 등을 고려한다면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의 복장 섬유류 유물은 복식사뿐만 아니라 직물, 염색, 민속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관음전 내부~ 관음전 내부의 벽면이 예사롭지않아보입니다
▲관음전 내부~ 관음전 내부의 벽면
▲송광사 이모저모 풍경도 담아봅니다~ 배롱나무꽃이 붉게 피어 멋스러움을 배가시켜주네요
▲약사전과 영산전이 문화재청 지정한 보물임을 알리는 문화재정보물비석,
보물제302호약사전, 보물제303호영산전
▲약사전 보물제302호
▲약사전 보물제302호
▲영산전 보물제303호
▲영산전 보물제303호~ 영산전 후불탱화와 팔상탱화가 보물제 1368호입니다
▲영산전 보물제303호 내부
보물제 1368호 후불탱화 팔상탱화입니다
▲응진당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54호)
송광사의 응진당은 나한전 또는 응진전이라고도 하며, 그 안에는 16나한상과 16나한도가 모셔져 있다.
▲응진당~ 석가모니 후불탱화 보물제1367호
▲응진당~ 십육나한 탱화 보물제1367호(2,4,6 존자)
▲응진당~ 십육나한 탱화 보물제1367호(7,9 존자)
▲응진당~ 십육나한 탱화 보물제1367호(8,10존자)
▲응진당~ 십육나한 탱화 보물제1367호(11,13,15존자)
▲응진당~ 십육나한 탱화 보물제1367호(12,14,16존자)
▲응진당~ 십육나한 탱화 보물제1367호(범천탱)
순천 송광사 응진당(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254호)에 있는 불화로, 정면 가운데 있는 후불탱화인 응진영산탱과 그 양옆에 각 4점씩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는 16나한도와 제석·범천탱화이다.
가운데 모셔진 응진영산탱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가섭과 아난 등 5존을 좌우대칭으로 배치하였다. 화면은 밝은 홍색과 황토색을 주색으로 청색과 초록이 부가된 화사한 느낌을 준다. 둥근 광배를 지닌 부처의 얼굴은 둥근 편이고 이목구비가 작다. 양어깨를 모두 감싼 옷에는 꽃무늬 장식단이 둘러졌고 무늬 장식이 매우 세밀하면서도 호화롭다. 양옆에 서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다양한 꽃무늬가 있는 옷을 입고 있으며 손에는 연꽃을 받쳐 들고 있다. 두 보살과 부처 사이에 있는 두 제자는 앞으로 슬며시 몸을 내밀듯한 자연스런 자세로 묘사되었고 투명한 광배 뒤로 배경을 가득 채운 상서러운 구름이 내비치고 있다. 1724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단아한 얼굴과 담묵의 필치, 능숙한 필선, 섬세한 장시기과 색조 등 18세기 전반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16나한도는 가운데 응진영산탱을 중심으로 홀수와 짝수의 존자들이 양쪽으로 나누어 배치되어 있는데, 건물의 기둥과 기둥 사이의 벽크기에 맞추어 화면크기가 달라지면서 한 화면의 구성인물수도 각각 다르다. 16나한은 대체로 중앙의 본존을 향하여 기암괴석과 구름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모두 시자(侍者)를 거느리고 있는데 눈과 입이 작고 표정의 변화가 적다. 채색은 진홍색과 녹색, 그리고 검은색을 대비시키면서 농담의 변화를 주어 밝은 느낌을 주며, 각 나한마다 이름이 적혀 있다. 양쪽 맨 마지막에 배치된 제석천과 범천을 그린 그림은 황토색 바탕에 붉은색과 초록색을 사용하였고 역동적인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다.
응진전 안에 있는 이 불화들은 응진전 안의 신앙적인 구도에 맞추어 제작된 것으로 보여 통일된 당내의 구도와 법설 제도를 알 수 있다. 또한 18세기 전반의 작품으로 제작연대가 확실하고 각 도상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16나한도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등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있다.
▲응진당 목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제1549호)
송광사 응진당에는 석가여래삼존상을 비롯하여, 아난·가섭존자 그리고 16나한, 제석천, 범천, 인왕, 사자를 모두를 갖춘 27구의 상들이 봉안되어 있다. 미륵보살입상을 제외한 26구의 상들은 17세기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응원(應元)을 비롯한 조각승들이 조성한 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자상(使者像) 대좌의 명문을 통해서 1624년(인조 2)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송광사의 이곳저곳~ 불일문입니다
▲송광사의 이곳저곳
▲송광사의 이곳저곳~ 약사전과 영산전의 뒷모습입니다~특이하게 전면이 담장을향하고있어 가까이 제데로 카메라에 담기가 어려웠습니다
▲송광사의 이곳저곳~ 약사전과 영산전의 다른각도에서 본 모습입니다
▲송광사의 이곳저곳~ 스님들 의식주를 해결하는 옛건물같아보입니다
▲송광사의 이곳저곳~ 선호당~ 스님들 식당이었습니다
▲송광사의 이곳저곳~ 스님들 기거하는 숙소로 보입니다
▲송광사의 이곳저곳~ 정수원입니다~스님들 기거하는곳으로 보입니다
▲송광사풍경~ 배롱나무꽃과 대둥보전의 고풍스런건물이 정말 멋집니다
▲송광사의 이곳저곳~ 대웅보전 인증입니다
▲송광사의 이곳저곳~ 대웅보전 인증입니다
▲송광사의 이곳저곳~ 이곳은 성보박물관입니다~ 사진촬영금지라서 문화재가 많은데도 아무것도 건진게 없어요
▲송광사 국사전 국보제56호
▲"송광사 국사전 국보제56호"
송광사 국사전은 나라를 빛낸 큰 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시고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로, 옛날에는 참선을 하던 곳이었다.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처음 지었고, 그 뒤 두 차례에 걸쳐 보수하였다.
앞면 4칸·옆면 3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의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미고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는데, 천장의 연꽃무늬와 대들보의 용무늬는 건물을 지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축 구조상 조선 초기 양식을 지니고 있는 이 건물은 순천 송광사 하사당(보물 제263호)과 같은 시대에 지은 것으로 짐작되며, 소박하고 아담한 형태와 그 기법에서도 주심포 중기 형식의 표준이라고 할 만한 중요한 건축물이다.
▲송광사의 이곳저곳~ 승보종찰 16국사진영봉안
▲송광사의 이곳저곳~ 승보종찰 16국사진영봉안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조계산도립공원 안내도를 마지막사진으로 마침니다
오늘 방문한 순천 송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로 . 대길상사(大吉祥寺)·수선사(修禪社)라고도 하며,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우리 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의 하나로 승보사찰(僧寶寺刹:훌륭한 스님을 가장 많이 배출함으로서 얻어진 이름)로서 매우 역사가 깊은 사찰이었다 많은것을 배울수있는 의미있는 사찰여행이었다
▲보물제1311호선암사대웅전
▲보물제395호선암사대웅전앞 삼층석탑설명
▲보물제395호선암사대웅전앞 동서삼층석탑중 좌측탑
▲보물제395호선암사대웅전앞 동서삼층석탑중 우측탑
▲보물제395호선암사대웅전앞 동서삼층석탑중 좌측탑
▲선암사만세루
▲보물제1311호선암사대웅전현판
▲보물제1311호선암사대웅전 처마 용머리 조각
▲보물제1311호선암사대웅전 석가모니불
▲보물제1311호선암사대웅전 석가모니불을 모신 천정 ~공포
▲선암사 대웅전에는 앞마당에 이러한 당간지주가 네개나 있네요
▲범종각
▲선암사 육조고사라고 되어있는 건물~팔상탱화복원불사접수라 쓰인 현수막이 눈에 띕니다
▲성보박물관~관람을 할수없어 아쉬웠습니다
▲범종루
▲선암사의 볼거리 뒷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제214호입니다 현재 화장실로는 유일하게 문화재로 등록된 화장실입니다
▲선암사 일주문(전라남도유형문화재제96호)
▲선암사 일주문 설명(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6호)
▲선암사 일주문(전라남도유형문화재제96호)
▲선암사 삼인당(전라남도기념물제46호)설명~ 삼인이란 제행무상인, 제법무아인,열반적정인의 삼법인을 뜻하는것으로 불교중심사상을 나타낸것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선암사 삼인당(전라남도기념물제46호)
▲선암사 삼인당(전라남도기념물제46호)
▲선암사 삼인당(전라남도기념물제46호)
▲선암사 강선루~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온다는 뜻으로 손님을 높여 부른 의미라고 합니다
일주문에 이르기전 누각을 세우는일은 드문 일이기도 하고 손님을 반갑게 맞이한다는 선암사의 전통을 느끼게하는 강선루 입니다
▲선암사 승선교(보물제400호)~승선교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숙종24년(1698)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을 뵙기를 기원하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아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였는데 이때 한 여인이 나타나 구해준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무지개 다리를 세웠으니 이것이 바로 승선교 다리라고 합니다
▲선암사 보물제400호 승선교
▲선암사 부도및 공덕비
▲선암사 부도군
▲선암사 표받는곳(성인3,000워)
▲선암사 매표소(성인3,000워)
▲선암사 매표소앞 선암사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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