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유네스코 양동마을 문화관

신용짱 2017. 9. 2.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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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8월26일 가족여행으로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 구경갔다가 양동마을문화관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이곳유물전시관에서 국가지정문화재 국보제283호 통감속편, 보물제 412호 향단, 보물제1261호 양민공초상등 다수의 문화재가 있다는것을 알게되었다

디카속에 담아온 양동마을 문화관의 모습을 펼쳐봅니다

 

 ▲양동마을문화관 모습

 ▲양동마을문화관 내부 유물전시관

 ▲양동마을문화관 내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양동마을 소개~양동마을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조선시대 동성 마을로 경주손씨와 여강이씨 두 가문이 500년 넘게 이어온 마을이라 한다

1984년12월24일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제189호로 지정되었고 이어 2010년 7월31일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마을안에는 국보1점,보물4점,중요민속문화재12점,경상북도유형문화재2점,기념물1점,민속자료1점,문화재자료1점등 모두22점의 국가 및 시도 지정문화재가 있다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 탐방길 안내도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세계문화유산양동마을 사진

 ▲양동마을문화관 제1전시실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손중돈과  이언적  설명

*손중돈(孫仲暾)~호는 우재(禹齋) 1463(세조9녀)~1529(중종24) 66세때졸

손소(孫昭)의 둘째아들이 바로 조선명현(朝鮮名賢)의 한 사람인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이다. 탁월한 문장력과 경륜에 밝았던 손중돈(孫仲暾)은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서 성종 6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성종 13년 문과에 급제, 예문관 봉교(藝文館奉敎) 양산군수(梁山郡守) 사복사정(司僕寺正) 등을 지냈다.

그러나 연산(燕山)의 폭정의 막이 오르던 1497년 간관(諫官)들이 거의 쫓겨날 때 파직,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 후 복원, 상주(尙州)목사로 부임했다. 이때 선정(善政)을 베풀어 주민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지어 추모했다 한다.

1517년 성절사(聖節使)로 명(明)에 다녀왔으며 공조(工曹)이조판서(吏曹判書) 등을 지냈다. 도승지(都承旨) 3번, 대사간(大司諫) 4번, 경상(慶尙) 전라(全羅) 충청(忠淸) 함경도관찰사(咸鏡道觀察使)를 지내고 우참찬(右參贊)에 오른 명신. 자신의 정치경륜을 피력한 ‘오조상소(五條上疏)’는 지금도 유명하다.

중종때 청백리에 올랐으며 경주(慶州)의 동강서원(東江書院)과 상주(尙州)의 속수서원(速水書院)에 제향,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그는 유명한 성리학자 이언적(李彦迪)의 외숙(外叔)이기도 하다. 이언적(李彦迪)은 우재(愚齋)선생의 학문에 많은 영향을 맏았다.


*이언적(李彦迪) 호는 회재(晦齋)1491(성종22)~1553(명종8)62세졸

경상북도 경주 출신. 본관은 여강[驪江, 여주(驪州)]. 초명은 이적(李迪)이었으나 중종의 명으로 언(彦)자를 더하였다. 자는 복고(復古),·자계옹(紫溪翁). 회재라는 호는 회암(晦菴: 주희의 호)의 학문을 따른다는 견해를 보여준 것이다. 할아버지는 참군 이수회(李壽會)이고, 아버지는 생원 이번(李蕃)이며, 어머니는 경주손씨(慶州孫氏)로 계천군(鷄川君)손소(孫昭)의 딸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정립에 선구적인 인물로서 성리학의 방향과 성격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주희(朱熹)의 주리론적 입장을 정통으로 확립하여 이황(李滉)에게 전해주었다.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 특색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 풍수지리 설명

양동마을은 풍수의 길지에 입지했다. 마을의 뒷배경이자 주산인 설창산의 문장봉에서 산등성이가 뻗어 내려 네줄기로 갈라진 능선과 골짜기가 여럿 나란히 있는 ‘勿(물)’자 형의 형국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마을은 조선시대 유명한 지리지인 택리지에서 길지로 언급됐으며 조선의 풍수에서‘삼남의 사대길지’에 포함됐다. 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많은데 일예로 勿자의 아랫부분에 획 하나를 더하면 血자가 된다하여 일제가 계획한 마을 안으로의 철도통과를 우회시켰고, 남향의 양동초등학교 건물을 동향으로 돌려 앉혔다.

내곡, 물봉골, 거림 하촌의 4골짜기와 물봉 동산과 수졸당 뒷동산의 두 산등성이, 그리고 물봉골을 넘어 갈구덕으로 마을이 구성되어 있다.마을의 진입로 쪽은 경사가 급한 산에 시선이 차단되고, 골짜기 밖에서는 마을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아 마을 입구에서는 그 규모를 짐작하기가 어렵고, 고가들도 접근해야만 볼 수 있다.

양동마을의 가옥과 건물들은 이와 같은 지형에 잘 조화돼 자연과 일체화된 경관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지형의 경사에 기대어 집의 자리를 잡고, 집에서 바라보이는 조망점을 풍수의 원칙에 따라 조정한 결과이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자연환경과 집들이 잘 조화를 이루어 정감어린 모습으로 다가오고, 숲속의 산새소리에 젖어드는 안온한 분위기가 양동마을의 큰 특징이다.


 경주손씨종택 서백당(書百堂)설명~중요민속문화재제23호

입향조(入鄕祖)인 양민공(襄敏公) 손소(孫昭, 1433~1484)가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한편 손소가 처가에 살다가 이 집을 짓고 분가하였다고도 전한다.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 1463~1529)과 그의 외손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이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여강이씨종택 무첨당 설명~보물제411호

조선시대 성리학자이며 문신이었던 회재 이언적(1491∼1553)선생 종가의 일부로 조선 중기에 세운 건물이다.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건물 내부를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가운데 3칸은 대청이고 좌우 1칸씩은 온돌방이다. 대청은 앞면 기둥 사이를 개방하고 누마루에서도 대청을 향한 쪽은 개방되어 있으며, 뒤쪽과 옆면은 벽을 쳐서 문짝을 달았다. 평면은 ㄱ자형을 띠고 있고 둥근기둥과 네모기둥을 세워 방과 마루를 배치하고 있다.

이 건물의 기능은 상류주택에 속해있는 사랑채의 연장 건물로 손님접대, 쉼터, 책읽기를 즐기는 따위의 여러 용도로 쓰이던 곳이다.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으며 별당건축의 기능에 충실하게 지은 건축물로 회재 이언적 선생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경주손씨종택 서백당(書百堂)설명~중요민속문화재제23호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여강이씨종택 무첨당 설명~보물제411호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각종 고택 모형전시 설명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각종 고택 모형전시 설명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각종 고택 모형전시 설명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관가정 ~보물제442호

조선 전기에 활동했던 관리로서 중종 때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우재 손중돈(1463∼1529)의 옛집이다.[1]

언덕에 자리잡은 건물들의 배치는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을 이루는데, 가운데의 마당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사랑채, 나머지는 안채로 구성된다. 안채의 동북쪽에는 사당을 배치하고, 담으로 양쪽 옆면과 뒷면을 둘러 막아, 집의 앞쪽을 탁 트이게 하여 낮은 지대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보통 대문은 행랑채와 연결되지만, 이 집은 특이하게 대문이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1]

사랑채는 남자주인이 생활하면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대문의 왼쪽에 사랑방과 마루가 있다. 마루는 앞면이 트여있는 누마루로 ‘관가정(觀稼亭)’ 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대문의 오른쪽에는 온돌방, 부엌, 작은방들을 두었고 그 앞에 ㄷ자로 꺾이는 안채가 있다. 안채는 안주인이 살림을 하는 공간으로, 부엌, 안방, 큰 대청마루, 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랑채의 사랑방과 연결이 된다. 네모기둥을 세우고 간소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뒤쪽의 사당과 누마루는 둥근기둥을 세워 조금은 웅장한 느낌이 들게 했다. 사랑방과 누마루 주변으로는 난간을 돌렸고, 지붕은 안채와 사랑채가 한 지붕으로 이어져 있다.[1]

관가정은 조선 중기의 남부지방 주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이다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초가집 설명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양민공 손소 초상설명 보물제1216호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양민공 손소 초상 보물제1216호

손소(孫昭) 1433년(세종 15)∼1484년(성종 15). 조선 초기의 문신.

시호: 양민(襄敏) 因事有功曰襄。好古不怠曰敏.。1484년(성종 15) 증시

일에 따라 공이 있은 것을 양(襄)이라 하고,

옛 것을 좋아하여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을 민(敏)이라 한다.

봉호: 계천군(雞川君)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일장(日章), 호는 송재(松齋).

아버지는 증 병조참판 사성(士晟)이다.

1459년(세조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에 보직되고,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로 있을 때 문예시(文藝試)에 장원하여 한 자급(資級) 특진되었다.

1464년 정월 《의방유취(醫方類聚)》의 교정을 잘못 보아 파직되었다.

그러나 그해 7월 집현전을 폐지하고 예문관이 대신하도록 했을 때 겸예문관이 되었다가 11월에 병조좌랑을 거쳐 종묘서령(宗廟署令)이 되었다.

1467년 5월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는 평노장군(平虜將軍) 박중손(朴仲孫)의 종사관(從事官)으로서 군무(軍務)를 관장, 평정에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책훈되고 내섬시정(內贍寺正)으로 특진되었다.

1469년(예종 1) 성주목사를 거쳐 공조참의와 안동부사를 역임하고 계천군(雞川君)에 봉해졌다.

1476년(성종 7) 11월 진주목사로 나갔다가 병으로 사직하여 전리(田里)로 돌아갔으나 왕이 특명으로 녹봉(祿俸)을 지급하도록 하였다. 그는 청렴결백하고 백성을 다스리되 친자식같이 하였다.

일찍이 성주목사로 있을 때 기근이 극심하게 들었으나 극진한 마음으로 구휼하여 희생자가 없어서, 그곳 이민(里民)의 호소로 임기가 연장되기도 하여 목민관의 모범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부모에 대한 효성도 지극하여 성주‧진주‧안동 등의 외관직은 경주에 있는 그의 노부를 봉양하기 위하여 스스로 원하여 왕의 특지(特旨)로 임명된 벼슬이었다.

글씨를 잘 썼으며, 시호는 양민(襄敏)이다.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국보제283호 통감속편 설명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국보제283호 통감속편

원(元)편으로 중국 고대 반고씨부터 고신씨까지 그리고 당나라 천복 1년(901)에서 송(宋)나라 상흥 2년(1279)까지의 사적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이 책은 원나라 1361년에 중국에서 발간된 적이 있고, 그후 60년만에 우리나라에서 찍어냈다. 이 책의 크기는 가로 18.3㎝, 세로 29.2㎝이다.

판본은 권말에 있는 변계량의 주자발(鑄字跋)에 의하면, 세종 2년(1420) 11월에 공조참찬 이천에게 명하여 새로운 활자를 만들어서 인쇄한 경자자본으로서 세종 4년(1422)에 간행된 것이며, 서, 목록, 서례는 계미자이다. 권말에 있는 변계량의 주자발은 『통감속편』 외에도 『세종실록』 권18, 『춘정집』 권12, 『동문선』 권103에 실려있다.

이 책은 서지학 및 고인쇄기술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지정조격(至正條格)설명

2002년 한국의 경주에서 <지정조격>이라는 원대 법전 원본이 발굴되었으며, 조사 결과 학술적ㆍ문화재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세계 유일본임이 확인되었다. <지정조격>은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던 당시 고려와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새롭게 분석하는 데 중요한 사료이며, 또한 고려와 조선의 법제사 연구와 풍습, 언어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이다.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지정조격(至正條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협주명현십초시(夾注名賢十抄詩)설명

2권 1책(본래는 상·중·하 3권이었으나 상권이 없어진 듯함). 인본. 중권에는 조하·위섬·피일휴·최치원·박인범·두순학·조당·방우처사·이웅의 시가 10수씩 실려 있으며, 조하의 시는 15수가 실려 있다. 하권에는 오인벽·한종·최승우·최광유·나업·계반·진도옥·나은·가도·이산보·이군옥의 시가 9수 또는 10수씩 실려 있다. 1337년(충숙왕 6) 권사복이 초간했으며, 1452년(문종 2) 밀양 부백 이백상이 감사 상국 이공과 함께 중간한 것을 권람이 오류를 바로 잡고 발문을 붙였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복제품이 전시되어있음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협주명현십초시(夾注名賢十抄詩)복제품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우재선생실기 설명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우재선생실기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양동마을문화관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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