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여행

금산사

신용짱 2017. 7. 2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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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7월19일(수) 전라북도 정읍시와 김제군에 걸쳐있는 모악산으로 산행을  다녀왔다

산행을 마치고 구경하게되는 금산사의 이모 저모를 카메라에 담아왔다   금산사는  금산사 일원이 우리나라 사적제 496호로 지정되어있고 국보제62호 금산사미륵전이 있으며 문화재의 보고라 해도 될만큼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있었다, 디카속 금산사의 모습을 펼쳐봅니다


모악산 금산사 일주문~일주문을 통행 사찰을 구경하게되는데요  이사진은 모악산 관광단지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정상을 찍고 하산길 산행을 마치는 지점이 금산사여서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고 금산사 구경을 하고 나오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문화재 관람료 3,000원을 내야만 입장할수 있습니다

 모악산 산행후 하산길 만나게되는 금산사의 문화재 인데요  여러 부도가 보입니다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제24호 혜덕왕사탑비  알림비석입니다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제24호 혜덕왕사탑비 와  부도가 있던 받침이 보입니다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제24호 혜덕왕사탑비 ~금산사 안에 서있는 탑비로, 혜덕왕사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혜덕은 고려 중기의 승려로서, 정종 4년(1038)에 태어나 11세에 불교의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그 이듬해에 승려가 되었다. 1079년 금산사의 주지가 되었으며 숙종이 불법(佛法)에 귀의하여 그를 법주(法主)로 삼자 왕에게 불교의 교리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59세에 입적하였으며, 왕은 그를 국사로 대우하여 시호를 ‘혜덕’, 탑이름을 ‘진응’이라 내리었다.

현재 비의 머릿돌은 없어졌으며, 비문은 심하게 닳아 읽기가 매우 힘든 상태이다. 비의 받침돌에는 머리가 작고 몸통이 크게 표현된 거북을 조각하였고, 비문이 새겨진 몸돌은 받침돌에 비해 커보이는 듯하며, 주위에 덩굴무늬를 새겨 장식하였다.

비문에는 혜덕의 생애·행적, 그리고 덕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글씨는 구양순법(歐陽詢法)의 해서체로 썼는데, 구양순의 글씨보다 더욱 활달하여 명쾌한 맛이 있다. 신라나 조선에 비하여 고려시대의 글씨가 훨씬 뛰어남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문에 의하면 비를 세운 것은 예종 6년(1111)으로 혜덕이 입적한 지 15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제24호 혜덕왕사탑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제24호 혜덕왕사탑비 

혜덕왕사탑비 옆에  또다른 탑비

금산사 관람의 시작 ~ 금강문 모습

금산사 금강문 내부 "나라연금강"~나라연금강은 천상의 역사로서 그 힘은 코끼리 백만배나된다고 합니다 나라연과 같은 힘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입니다



금산사  금강문 내부 "보현동자"~보현보살이 동자로 화현한 것으로 석가모니불의 우협시보살로 진리의 광대행을 맡고있으며 행원의 실천을 나타내기 위하여 코끼리를 타고 있습니다



금산사 금강문 내부 "밀적금강"~금강의 무기를 가지고 부처님을 경호하는 야차신입니다

부처님의 비밀한 서적을 들으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금산사 금강문 내부 "문수동자"~문수보살이 동자로 화현한 것으로 석가모니불의 좌협시보살로 지혜를 맡고있으며 위엄과 용맹을  나타내기 위해 사자를 타고있습니다



▲용도를 알수없는 건물

▲금산사 천왕문

▲금산사 천왕문  들어서면서 좌측 서방광목천왕과  북방다문천왕


▲금산사 천왕문  들어서면서 좌측 서방광목천왕~방위로는 서쪽을 가리키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용 왼손에는 여의주를 쥐고있으며 천공의 위치는 백은타이며 악인에게 고통을 주어 도심을 일으키게 하는 서원을 세웠다고합니다

▲금산사 천왕문  들어서면서 좌측 (우) 북방다문천왕~방위로는 북쪽을 가리키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삼지창 왼손에는 보탑을 들고있다. 천공의 위치는 수정타이고 어둠속을 방황하는 중생을 제도하는 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금산사 천왕문  들어서면서 우측 (좌) 동방지국천왕~방위로는 동쪽을 가리키고 있으며 손으로는  비파를 켜고있다.천공의 위치는 황금타이며 선한 이게게는 복을  악한이게는 벌을 내리는 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금산사 천왕문  들어서면서 우측 (우) 남방증장천왕~방위로는 남쪽을 가리키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검을 왼손은 주먹을 쥐고있다,  노한 눈이 특징이며.천공의 위치는 유리타이며 만물을 소생시키는 덕을 베푸는 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천왕문지나  보제루

▲금산사 의 최대 볼거리  국보제62호미륵전

모악산에 자리한 금산사는 백제 법왕 2년(600)에 지은 절로 신라 혜공왕 2년(766)에 진표율사가 다시 지었다.

1층과 2층은 앞면 5칸·옆면 4칸이고, 3층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지붕 네 모서리 끝에는 층마다 모두 얇은 기둥(활주)이 지붕 무게를 받치고 있다.

건물 안쪽은 3층 전체가 하나로 터진 통층이며, 제일 높은 기둥을 하나의 통나무가 아닌 몇 개를 이어서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웅대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미륵전은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조선 인조 13년(1635)에 다시 지은 뒤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거대한 미륵존불을 모신 법당으로 용화전·산호전·장륙전이라고도 한다.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금산사 의 최대 볼거리  국보제62호미륵전  설명


미륵전안에 모셔진 등록문화재 제619호로 지정된 석고미륵여래입상입니다

한국 근대조각의 대표적 작가인 김복진의 대표작으로, 대형불상을 조성하던 전통적 방식이 사라진 이후 근대기에 새롭게 등장한 석고를 재료로 제작한 대표적 사례로 역사적 가치가 큼. 근대기 새로운 기법과 조형의지를 담아 낸 김복진의 기념비적 작품임.

김제 금산사 석고미륵여래입상

미륵전안에 모셔진 등록문화재 제619호로 지정된 석고미륵여래입상입니다~ 높이가 12m로  실내불로는 세계 최대의 입불이라고 하네요

보물제27호 금산사 육각다층석탑

금산사 소속의 봉천원(奉天院)에 있던 것을 현재 자리인 대적광전 앞의 왼쪽으로 옮겨 왔다. 우리나라의 탑이 대부분 밝은 회색의 화강암으로 만든 정사각형의 탑인데 비해, 이 탑은 흑백의 점판암으로 만든 육각다층석탑이다.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에는 연꽃조각을 아래위로 장식하였다. 탑신부(塔身部)는 각 층마다 몸돌이 있었으나 지금은 가장 위의 2개 층에만 남아 있다. 몸돌은 각 귀퉁이마다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고, 각 면에는 원을 그린 후 그 안에 좌불상(坐佛像)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낙수면에서 아주 느린 경사를 보이다가, 아래의 각 귀퉁이에서 우아하게 들려있다. 밑면에는 받침을 두었는데, 그 중심에 용과 풀꽃무늬를 새겨놓았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남은 것이 없었으나, 훗날 보충한 화강암으로 만든 장식이 놓여 있다.

벼루를 만드는데 주로 쓰이는 점판암을 사용하여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각 층의 줄어드는 정도가 온화하고 섬세하다. 몸돌과 지붕돌에 새겨진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탑으로 짐작된다.

보물제27호 금산사 육각다층석탑 설명

금산사 대적광전

금산사 대적광전 설명

금산사 대적광전  내부 모습

금산사 대적광전  석가모니 부처님, 보현보살,중심불인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노사나불


금산사 대적광전 내부 모습

보물제23호 석련대

석련대는 석조연화대좌의 준말로 불상을 올려놓는 돌로 만든 받침대이다. 연화대좌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이것은 형태가 희귀하고 크기도 매우 거대하다. 금산사 대적광전에서 동남쪽으로 10m쯤 되는 돌단 밑에 있는데, 이곳이 원래 위치인지는 알 수 없다.

한 돌로 조각한 것이지만 여러 개의 돌을 사용한 것처럼 상·중·하의 구성이 정연하다. 상대는 윗면이 평평하며 중앙에 불상의 양발을 세워 놓았던 것으로 보이는 네모난 구멍이 두 개 있다. 밑면에는 윗면을 떠받치는 연꽃이 에워싸고 있으며, 꽃잎 사이에도 작은 잎들이 틈틈이 새겨져 있어 더욱 화려하다. 중대는 육각형으로 꽃무늬를 돋을새김하였다. 하대는 엎어놓은 연꽃모양이 출렁이는 물결무늬처럼 전면을 채우고 있다.

이 작품은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사치스러운 조각 및 장식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보물제22호 노주

『금산사사적』에 의하면, 금산사는 600년대 창건되어 신라 혜공왕 2년(776)에 진표율사가 다시 고쳐 세우면서 큰 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고려 전기인 935년에 후백제의 신검이 아버지인 견훤을 유폐시켰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 노주는 금산사 대적광전에서 서남쪽에 위치한 대장각으로 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데, 그 이름을 노주(露柱)라고는 하였으나 실제로 무엇으로 사용한 것인지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보기 드문 유물이다. 꼭대기에 놓인 꽃봉오리모양의 조각만 없으면 불상을 얹는 사각형의 대좌(臺座)처럼 보인다.

땅 위에 바닥돌을 놓고, 그 위에 아래·중간·위받침돌을 순서대로 얹어놓았다. 아래받침돌에는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면을 둘로 나눈 뒤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아래받침돌 윗면과 윗받침돌에는 아무런 꾸밈이 없는 중간받침돌을 사이에 두고 대칭되게 연꽃잎을 새겼는데, 아래받침돌의 연꽃잎이 넓고 짧은 반면, 윗받침돌의 연꽃잎은 좁고 길쭉하게 표현하였다. 꼭대기에는 석탑과 같은 머리장식이 남아있는데, 둥근 받침부분과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가늘고 긴 사잇기둥이 연결하는 형식이다.

절이 창건된 때가 통일신라시대라고는 하지만, 당간지주 외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되는 것이 거의 없다. 이 노주도 받침돌에 새겨진 조각의 양식이나 각 부분의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제22호 노주 설명

▲금산사 명부전

▲금산사 명부전  내부  지장보살과 시왕상

보물제25호금산사5층석탑

금산사 안의 북쪽에 송대(松臺)라고 불리는 높은 받침 위에 세워져 있는 탑이다. 바로 뒤에는 석종모양의 사리계단이 있는데, 이렇듯 사리계단 앞에 석탑을 세워놓은 것은 사리를 섬기던 당시 신앙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상·하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의 탑이다. 기단부는 아래층 기단의 규모가 좁아져 있고, 각 기단의 윗면에 다른 돌을 끼워서 윗돌을 받치도록 하고 있어 주목된다. 탑신부는 2층 이상에서 줄어드는 비율이 제법 부드럽고, 각 층의 몸돌에 새겨진 기둥조각이 넓은 편이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6번째 층은 다른 층처럼 몸돌의 각 귀퉁이에 기둥이 새겨져 있고, 지붕돌 모양의 것이 덮여 있으나, 이것은 탑의 머리장식을 받치기 위한 노반(露盤)으로 다른 탑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머리 장식은 온전히 유지되어 원형이 잘 남아 있다.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기본 양식을 따르면서도 기단이나 지붕돌의 모습 등에서 색다른 면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 작품으로서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보물제25호금산사5층석탑과 보물제26호 금강계단 사리탑


보물제26호 금강계단석종

모악산에 자리한 금산사는 백제 법왕 2년(600)에 창건된 절로, 통일신라 경덕왕 때 진표가 두 번째로 확장하여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금산사 경내의 송대(松臺)에 5층석탑과 나란히 위치한 이 석종은 종 모양의 석탑이다. 매우 넓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사각형의 돌이 놓이고, 그 위에 탑이 세워졌다.

석종형 탑은 인도의 불탑에서 유래한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외형이 범종과 비슷해서 석종으로 불리운다.

금산사 석종

보물제26호 금강계단석종

기단의 각 면에는 불상과 수호신인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새겨져 있다. 특히 아래 기단 네 면에는 인물상이 새겨진 돌기둥이 남아 돌난간이 있었던 자리임을 추측하게 한다. 난간 네 귀퉁이마다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다. 탑신(塔身)을 받치고 있는 넓적한 돌 네 귀에는 사자머리를 새기고 중앙에는 연꽃무늬를 둘렀다. 판석 위에는 종 모양의 탑신이 서 있다. 꼭대기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머리를 밖으로 향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고 그 위로 연꽃 모양을 새긴 2매의 돌과 둥근 석재를 올려 장식하였다.

기단에 조각을 둔 점과 돌난간을 두르고 사천왕상을 배치한 점 등으로 미루어 불사리를 모신 사리계단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탑은 가장 오래된 석종으로 조형이 단정하고 조각이 화려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보물제828호 석등

보물제828호 석등 설명

보물제827호 대장전

금산사는『 금산사사적』에 따르면 백제 법왕(600)때 세운 절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원래 미륵전 뜰 가운데 세운 목조탑으로 불경을 보관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예전의 기능은 없어지고 안에 불상을 모시고 있다.


보물제827호 대장전  내부


보물제827호 대장전  설명

▲금산사 범종각

▲금산사 범종각 설명

▲금산사 미륵전  풍경

보물제28호 당간지주

보물제28호 당간지주  설명

▲일주문 가는길  만난   현판도 없는 조그만 건물에 석불입상이 있습니다

▲일주문 향하다 만나는  조그만 건물안에 모셔진 석불입상

▲금산사 조감도

▲금산사 설명


▲금산사 개산천사백주년기념관

▲금산사 템플스테이



▲금산사 구경 시작을 알리는 일주문 

▲금산사 매표소

▲금산사 미륵성지  표지석

▲금산사 입구  주차장으로 가면서 만나는 개화문  ~ 새로 복원해놓은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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