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5월23일 보경사를 품고있는 100대명산 내연산으로 산행을 갔다가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중산리 622에 있는 천년고찰 보경사를 구경하고왔다 내연산은 내연산12폭포와, 보경사로 더 유명하다,보경사의 이곳저곳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디카속에 담겨진 보경사의 모습을 펼쳐봅니다
▲보경사 일주문 입니다 ~참고로 보경사는 삼국시대603년(진평왕25년)에 중국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 지명법사가 창건한 신라 고찰이라고 합니다
지명법사는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찿아 진나라에서 유학할때 받은 팔면보경을 묻고 그위에 불당을 세우면 외세의 침입을 막고 삼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왕에게 고하였더니, 왕은 그와 함께 종남산 아래 큰 못을 메워 팔면경을 묻고 금당을 건립한뒤 보경사라 하였다 함
▲보경사 매표소 ~입장료 3,000원을 내야 합니다
▲보경사 입장료를 내고 표를 가진자만 출입을 시키고 있네요
▲보경사 입구 내연산12폭포 설명
▲보경사 해탈문- 이 문을 들어서면 해탈의 경지에 들게 되려나?
보경사는 고려 현종 때 금당탑을 조성하고 1215년(고종3)에는 원진 국사가 보경사 주지로 취임하여 사세를 다시한번 일으켰다고합니다
원진국사가 입적하고 부도 및 비를 조성하여 사찰 내에 건립하였으며 현재 보물제252호로 지정되어있음
▲보경사 범종각
▲보경사 천왕문~ 이 건물은 보경사 경내를 수호하는 수문장격인 사천왕을 봉안한 곳이다
사천왕이란 동서남북의 지국천왕, 증장천왕, 광목천왕, 다문천왕, 넷 천왕을 말한다
이 사천왕은 인간들이 착한일을 하면 낙을 주고 악한일을 하면 고(苦)를 주는 선신으로서의 불법을 옹호하고 정도를 행하는사람을 보호한다고 합니다
이건물은 숙종34년(AD1708)에 중건한 건물이고 모셔져 있는 사천왕상은 불기1324(AD1980)새로 봉안한것이랍니다
▲보경사 천왕문 내부 좌측 서방광목천왕과 북방다문천왕
▲보경사 천왕문~서방광목천왕 서방광목천왕은 사찰마다 다르게 표시되어있어 헷갈리기 쉬운데 대부분 깃발과 보탑을 쥐고있는것이 보편적인데 보경사 사천왕상은 좀 다른 창을 쥐고 있는점이 특이하다 북방다문천왕과 표시가 바귀지 않았나 생각이듭니다
▲보경사 천왕문~북방다문천왕 ~북방다문천왕도 이곳에서는 서방광목천왕과 표시가 바뀐것 같은데요 북방다문천왕은 다른사찰에서는 비파나 깃발과 보탑을 들고있는것이 보편적입니다
▲보경사 천왕문 내부 오른쪽 동방지국천왕과 남방증장천왕
▲보경사 천왕문 동방지국천왕
▲보경사 천왕문 남방증장천왕
▲보경사 오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3호
▲보경사 오층석탑 설명
▲보경사 오층석탑
▲보경사 적광전(보물제1868호) ~이건물은 주불인 비로자나불과 좌 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삼존불을 모신곳으로 조선 숙종3년에 중건한 것이며 그후 몇 차례 중수가 더있었다고 적혀있다
▲보경사 적광전 설명(보물제1868호)~ 현존하는 보경사 건물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보경사 적광전 (보물제1868호) 현판~보경사 적광전은 사명대사가1588년에 지은 내연산 보경사금당탑기에의하면 603년(신라진평왕25)에 창건된뒤 1214년(고려고종원년)에 원진국사가 중창하고 1677년(숙종3년)에 심창한 불전으로 기록되어있으나 한반도의 불교전래 역사를 볼때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함
▲보경사 적광전 (보물제1868호) 내부 주불인 중앙에 비로자나불과 좌우 협시불
▲보경사 적광전 (보물제1868호) 내부 주불인 중앙에 비로자나불과 좌우 협시불
▲보경사 적광전 옆의 소나무
▲보경사 종무소와 기념품을 판매하고있는 건물
▲보경사 대웅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1호)~ 이건물은 조선숙종3년에 새로 지었고 목조불전으로 정면3칸 측면2칸인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기단 위에 자연방형 주추돌을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운다음 기둥 윗몸에 창방과 평방을 둘렀다, 평방 위에는 가운데 칸에 2구, 협칸에 1구씩의 공간포를 배열하였다
▲보경사 대웅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1호)설명
▲보경사 대웅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1호)내부~대웅전 내부는 바닥에 마루를 깔았고 가운데 칸 뒤편에 부처를 모신 불단은 고주에 의지하여 설치하고 삼존불상을 모셨으며 상부에는 낙양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보개를 설치하였다
▲보경사 팔상전~팔상전은 석가세존의 일대생애를 시기적으로 여덜가지로 나누어 그것을 팔폭화면으로 그려 모신전각을 말한다
이 팔상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모시고 왼쪽에 미륵보살 오른쪽에 제화갈라보살을 모시고 양주변에 네폭씩 팔상탱화를 배열하였다
이 전각은 조선숙종3년(AD1678)에 지총 스님이 화주하여 세웠다
▲보경사 팔상전 ~ 내부 중앙에 석가모니불, 좌측 미륵보살, 오른쪽 제화갈라보살
▲보경사 팔상전 ~ 내부 좌측 팔상의 탱화중 네폭의 탱화
▲보경사 팔상전 ~ 내부 우측 팔상의 탱화중 네폭의 탱화
▲보경사 산영각 ~산영각(山靈閣)은 내연산 산신과 시방법계의 산신을 봉안한 전각인데 산신은 보경사 경내를 수호하고 불법과 선행을 행하는 사람을 수호하는 선신이다
이 전각은 원래 여기서 북쪽으로100m 산속에 있던것을 AD1914년에 현장소로 이건하였다함
▲보경사 원진각 ~ 이 전각은 당사 창건주 지명법사의 영탱과 원진국사의 등상을 모시고 그 밖에 서산 사명대사와 당사에서 수도와 교화를 하시다가 입적하신 대덕스님들의 진영을 모신 전각이다
이 전각의 건립은 조선 숙종3년에 학열스님이 화주하여 세웠다
▲보경사 원진각 ~ 내부 좌측 동몽화상 진영, 설월대선사 진영, 영호대선사 진영
▲보경사 원진각 ~ 내부 북국우새 사명대사, 장건주 지명법사 진영
▲보경사 원진각 ~ 내부 중창주 원진국사 진영
▲보경사 원진각 ~ 여러 선사님들의 진영을 함께 모시고있네요
▲보경사 영산전 ~ 영산전은 석가세존이 생존해 계실때 인도 영취산 이란곳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많이 하셨는데 이를칭해 영산이라고도 한다함
이 영산전에는 가운데 석가세존 좌우에 사자를탄 문수보살과 코끼리를탄 보현보살을 모시고 그좌우로 16라한을 배열하였다, 일명 십육나한전 이라고도 한다
참고로 아라한이란 소승의 교법을 수행하여 도를 깨달은 성자를 말한다
▲보경사 영산전 ~ 내부 좌측 16 아라한
▲보경사 영산전 ~ 내부 중앙 석가세존 좌측 사자를탄 문수보살 우측 코끼리를탄 보현보살
▲보경사 영산전 ~ 내부 우측 16 아라한
▲보경사 명부전 ~ 명부전은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다음생을 받기 전에 이 세상에 있을때 행한 선악간의 행위를 심판받아 새로운 몸을 받게 되는데 그 심판하는 관부를 형상화한 것으로서 중앙에 지장보살 좌우에 도명존자,무독귀양, 그리고 좌우로 염라대왕을 비롯해 십대왕을 모신 전각이다
일명, 지장전, 십왕전 이라고도 하며 이건물은 조선숙종3년(AD1678)에 건립한 건물이다
▲보경사 명부전 ~ 내부 중앙 지장보살과 좌측 도명존자,,우측 무독귀양
▲보경사 명부전 ~ 명부전은 내부 좌측 10대왕과 판관상
▲보경사 명부전 ~ 명부전은 내부 우측 10대왕과 판관상
▲보경사 원진국사비 설명(보물제252호)
▲보경사 원진국사비 (보물제252호)알림 문화재청비석
▲보경사 원진국사비 (보물제252호) ~ 고려시대에 제작된 원진국사비는 당초문양(唐草紋樣)이며 비 상단귀점이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있다
원진국사(1171~1221)의 속성(俗姓)은 신씨(申氏),호(號)는 승형(承逈),자(字)는 형회(永廻)이며 13세인 1200년에 희양산(曦暘山)봉암사(경북문경시가은읍소재)의 동순(洞純)에게서 삭발하고 이듬해 금산사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명종의 후애(厚愛)를 받으며 전국명산을 유력(遊歷)하고 희종4년(1208)에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 머물다가 강종(康宗)3년에 삼중대사가 되고 고종3년(1206)에 대선사(大禪師)가되어 보경사 주지가 되었다. 경진년 봄에 의종은 그의 넷째아들을 삭발하여 대사에게 친속하게 하는등 왕실의 신임을 받았고 고종8년에 팔공산 염불사에 이거한후 10월10일 51세로 입적하니 왕이 국사(國師)로 추증(追贈)하고 시호를 원진(圓眞)이라 하였다
▲보경사 원진국사비 (보물제252호) ~ 귀부: 이비명은 통의대부 추밀원 우부승선성 국지감 대사성 사자금어대신 이공로(李公老)가 짓고 글씨는 장사랑 대관서승겸보문각교감 김효인(金孝印)이 썼다
이 비석은 1224년(고종11년)에 세워졌는데 갓이 없고 신석양각을 귀접이한 독특한 형식으로 귀부(龜趺)와 대석(臺石)은 단일석(單一石)이고 비좌(碑座)는 폭이 배면과 같은 정도의 넓이로 주위에 단변44연변을 조각하였고 귀갑(龜甲)은 6각형의 갑문(甲紋)내에 왕(王)자를 새겼으며 귀두(龜頭)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처럼 조각하였으며 신석(身石)둘레에는7.4cm의 당초문양 덩굴무늬를 장식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고려중기의 특색이라 할수있다 귀부는 화강암 비신은 사암으로 되어있다.
비문의 서체는 큰 글자는 전서체(篆書體)로 옆으로 적었고 작은 글자는 해서체(楷書體)로 아래로 적었다. 글자 크기는 큰 글자는 7.6cm, 작은글씨는 2.0cm이다. 비문에는 원진국사의 생애와 행적이 기록되어있으며 비문에의하면 비가 완성된것은 고종11년(1224)으로 원진대사가 입적한지 3년이 지난후의 일이다
▲보경사 탱자나무(경상북도 기념물제11호)
▲보경사탱자나무 설명
▲보경사템플스테이 건물같네요
▲보경사를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성보박물관을 구경하게되는데요 성보박물관 입구모습입니다
▲보경사 성보박물관 입구의 비사리구시 설명
▲보경사 성보박물관 입구의 비사리구시 전시물 ~ 나무로 만든것으로 무척 큰 규모입니다
▲보경사 성보박물관 내부 전시물입니다~보경사의 사계
▲보경사 성보박물관 내부 전시물입니다
▲보경사 성보박물관 내부 전시물입니다~
▲보경사 성보박물관 내부 전시물입니다~묘법연화경
▲보경사 성보박물관 내부 전시물입니다~청동금고
▲보경사 성보박물관 내부 전시물입니다~ 청동바라
▲보경사 성보박물관 내부 전시물입니다~서운암동종(보물제11-1호)
▲성보박물관 유물~신중도
▲성보박물관 유물 보경사 팔상도
▲성보박물관 유물 보경사 팔상도
▲성보박물관 유물 칠성도
▲성보박물관 유물 보물제1609호 괘불탱
보경사 괘불탱은 1708년(숙종 34)에 조성되었지만, 17년 뒤인 1725년(영조 원년)에 중수하였다. 화원은 의균(義均)·석민(碩敏)·성익(性益)·지붕(智朋)·체환(體環)·쾌민(快敏)·삼학(三學)인데, 모두 대구 팔공산 동화사와 파계사의 불화 조성에 참여한 화사로 주로 경상도에서 활약한 것으로 보인다.
이 괘불탱은 10m에 이르는 대형의 화면에 연꽃줄기를 든 보살형의 여래만을 단독으로 그렸는데, 의균의 작품 중에서 최대의 역작이다. 대형의 화폭에 단독의 존상만을 그린 구성은 매우 단순하지만 홍색과 녹색, 청색계열의 색만을 이용해 조화와 대비를 훌륭하게 처리하였고, 여래가 입고 있는 가사의 조(條)에 금 바탕에 녹색으로 문양을 내는 장식이나 끝단의 세부 문양 등 세부장식에도 소홀함이 없다.
보경사 괘불탱같이 5여래가 표현된 화려한 보관과 연꽃을 들고 있는 괘불도상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 경상도지역에서 유행한 괘불형식으로 괘불 도상의 계승을 연구하는 데 의미 있는 작품으로 생각된다.
▲보물제430호 원진국사 부도 (보경사승탑)
보경사 뒷산의 중턱에 서 있는 묘탑으로, 원진국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원진국사 신승형(申承逈)은 고려 중기의 승려로, 51세에 입적하자 고종이 그를 국사로 추증하고 ‘원진’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기단부(基壇部)의 아래·중간·윗받침돌 가운데 3단으로 이루어진 8각 아래받침돌은 맨윗단에만 연꽃조각이 둘러져 있다. 중간받침돌은 8각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새겨두었다.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꽃잎의 끝이 뾰족하고 중앙의 세로선이 볼록하게 돌출되어 당시로서는 드문 모습이다.
탑신(塔身)은 몸돌이 매우 높아 마치 돌기둥처럼 보이며, 한 면에만 자물쇠모양을 새겨놓았다.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느리고, 모서리에서 뻗어나가는 곡선의 끝마다 꽃장식이 조그맣게 솟아있다. 처마의 곡선은 양쪽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고, 추녀는 두터워 보인다.
지붕돌 위의 머리장식으로는 활짝 핀 연꽃받침 위에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을 올리고, 연꽃조각이 새겨진 돌을 놓은 다음,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얹어서 마무리 하였는데 보존이 잘 되어 원래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나, 몸돌이 지나치게 길어 전체가 길쭉해 보이며 너비도 좁아 안정감이 적다. 각 부분의 조각에도 생략이 많아 단순한 감이 들고 밋밋하다.
▲보물제430호 원진국사 부도 설명(문화재청검색은 보물제430호 보경사 승탑으로 되어있음)
▲오암집 경판
▲성보박물관 전시물~양종정사오암당대선사 진영
오늘 구경을 마친 보경사는 알려진 이름값을 하는 사찰이었습니다
규모는 중간급 크기의 사찰로 이곳 저곳을 둘러보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고 발품도 적게 들이고 구경을 마칠수 있었습니다,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도 다양했고 성보박물관도 무료로 관람할수있어 좋았습니다, 내연산 산행사진을 보시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