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여행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

신용짱 2018. 12. 30.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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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12월29일 부석사로 유명한 도비산부석사를 구경하고왔다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이다.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일주문

도비산 창건설화:첫째는 677년(문무왕 17)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이다. 의상이 이 절을 창건할 때에 도둑의 무리들이 몇 번이나 달려들어 허물어버리자, 선묘(善妙)의 화신(化身)인 용(龍)이 크게 노하여 큰 바위를 공중에 띄워 빙글빙글 돌리면서 금시라도 떨어뜨릴 기세를 보였다. 도둑들은 혼비백산하였고, 절을 창건한 뒤 선묘의 호법(護法)을 기념하기 위하여 부석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설화는 경상북도 영주의 부석사에 얽힌 설화이므로 의상의 창건 또한 신빙성이 없다. 현재 절 앞 10㎞ 지점의 바다에 부석섬이 있고 이 절이 있는 산 이름을 섬이 날았다는 뜻에서 도비산이라 한 것이 모두 이 설화와 관련된 것이다

또 다른 설에는 고려 말의 충신 유금헌(柳琴軒)이 망국의 한을 품고 물러나 이곳에다 별당을 지어 독서삼매로써 소일하였는데, 그가 죽자 승려 적감(赤感)이 별당을 사찰로 변조하였고 사찰명도 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섬이 마치 뜬 것같이 보이므로 부석사라 하였다고 한다.

두 가지 창건설 중 후자가 다소 신빙성이 있다. 창건 이후 조선 초기에 무학(無學)이 중건하였고 근대에는 만공(滿空)이 주석하면서 선풍을 떨치기도 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을 비롯하여 심검당(尋劍堂)과 요사채, 산신각 등이 있으며 극락전 앞에는 안양루(安養樓)가 있는데 서해를 향하고 있다. 심검당 앞에 있는 부석약수는 유명하다. 극락전 내에 봉안되어 있었던 아미타삼존불은 상호가 빼어난 수작이었으나 1980년에 도난당하였다.

현재 일본 쓰시마 관음사(觀音寺)에 있는 금동관음보살상은 1330년(충혜왕 17)에 이 절에서 조성하여 봉안한 것인데, 고려 말에 왜구에게 약탈되었던 듯하다.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 태종대왕 도비산 강무 기념비

  ▲도비산(島飛山)탐방안내도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올라가는길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풍경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금동관음보살좌상~재판에서 이겨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도비산(島飛山)부석사(浮石寺)금동관음보살좌상

높이 50.5㎝. 일본 쓰시마 섬[對馬島]도요타마무라오츠나[豊玉村小網]의 관음사 소장하던 우리 문화재중 약탈문화재였던것을 문화재 전문 절도단이 일본으로부터 훔쳐와 문재가된 금동관음 보살좌상입니다.재판에서 이겨 우리문화재로 소장할수있게되었다고합니다

 복장품 조사를 통해 1330년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부석사에서 현세에 재난을 없애고 복을 누리며 내세에 아미타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30여 명의 발원에 의해 주존불로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

대좌와 광배를 잃었으나 불신의 상태가 양호한 편이며, 길상좌에 수인은 하품중생인을 취하고 있다.

보관이 없어져 높이 틀어올린 보발이 보이며 풍만한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보살상이면서 불의를 입고 있는 것이 특이하며 고려 후기에 유행한 불상 형식의 특징인 띠매듭이나 금구장식도 표현되어 있다. 화려한 목걸이와 두 무릎에 보이는 영락장식에 의해 보살상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당시 보살상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연대가 확실한 고려 후기의 보살상 중 가장 이른 예로, 장곡사금동약사불좌상(1346) 또는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좌상(1346)과 같은 양식 계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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