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1월20일 강천산 산행을갔다가 강천사(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강천사길 270. 팔덕면 청계리)고 강천사를 카메라에 담아왔다
강천사는 산세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할 형상이라하여 용천사라고도 하였다 한다
선조때 학자 귀봉 송익필이 이곳에 유숙하며 숙강천사 라는 제목의 시를지었는데 이때부터 강천사라 불리었다 한다
▲강천산 산행을 하고 내려오면서 카메라에 담아보는데요 수령이 300년되었다는 모과나무가 먼저 눈에들어옵니다
▲강천산 수령이 300년되었다는 모과나무
▲강천산 강천사 령이 300년되었다는 모과나무
▲순창 삼인대 설명(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27호)
▲순창 삼인대 입구의 비석
▲순창 삼인대~ 삼인대는 1515년 廢妃 愼氏(폐비신씨) 1739년에 단경왕후로 추존~의 복위를 주청하는 상소를 올린 순창군수 김정(金淨) ,담양부사 박상(朴祥), 무안현감 류옥(柳沃)의 행적을 기념하기위한곳이다.
폐위된 연산군의 처남으로 중종반정때 피살된 좌의정 신수근의 딸인 폐비 신씨는 후환을 염려한 방정공신 박원종등에 의해 폐출되었다 그후 새로 왕비가된 장경왕후 윤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세 사람은 각자의 직인을 소나무가지에 걸고 관직에서 물러남은 물론 죽음을 각오하며 폐비 신씨의 복위 상소를 올렸다한다 그러나 이들의 상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귀양에 처해지는 형벌을 받았다 한다
▲순창 삼인대~ 후에 호남과 순창지역의 유림들은 이들을 추모하기위해 비와 함께 비각을 세우고 삼인대라 불렀다고 하며 삼인대란 명칭은 세개의 직인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함
▲순창 삼인대비: 높이 157cm, 폭 80cm, 두께23cm, 1744년(영조20년)4월에 세운것인데 도암(陶庵) 이재(李縡)가 비문을 짓고 정암 민우수(閔遇洙)가 비문의 글씨를 썼으며 지수재(知守齋) 유척기(兪拓基)가 전서를 썼다한다
▲순창 절의탑비
▲순창 절의탑
▲순창 강천사 대웅전 모습
강천사는 산세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할 형상이라하여 용천사라고도 하였다 한다
선조때 학자 귀봉 송익필이 이곳에 유숙하며 숙강천사 라는 제목의 시를지었는데 이때부터 강천사라 불리었다 한다
▲순창 강천사 대웅전앞 강천사 오층석탑설명
▲순창 강천사 대웅전앞 강천사 오층석탑
▲순창 강천사 대웅전앞 강천사 오층석탑
▲순창강천사 일주문인 강천문
▲순창강천사 글락교
강천사 군립공원 입구에서 1.8km 지점에 위치한 강천사는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년)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그 후 번창하여 고려 충숙왕 3년(1316년) 덕현선사가 사찰을 중창하고 5층 석탑을 세웠고 한때 12개 암자와 1천여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석탑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다. 선조 37년 (1604년)에 소요대사가 재건했으나 다시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9년 원상대로 복원하였다. 충신리와 남계리, 석장승, 순창객사, 순화리 3층 석탑 등의 문화재가 있으며 주변 관광지로 금성산성, 용소폭포, 강천호, 담양호, 추월산, 희문산, 내장산국립공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