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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나무는 주로 영·호남지방에 분포하며 일본·중국에서도 자란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나무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나 있어 과수원 울타리용으로 적합하다.
강화도 역사박물관 옆에 서 있는 갑곶리의 탱자나무는 나이가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4.2m, 뿌리부분 둘레 2.12m이다.
강화도는 고려 고종(재위 1213∼1259)이 몽고의 침입을 해 있었던 곳이며, 조선 인조(재위 1623∼1649)도 정묘호란(1627) 때 난을 피했던 장소이다. 이 때 외적을 막는 수단으로 강화도에 성을 쌓고, 성 바깥쪽에 탱자나무를 심어서 외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 탱자나무는 그 때 심은 것이 살아남은 것으로 추측된다.
강화도는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어서, 탱자나무를 처음 심었을 때 조정에서는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자세히 보고하게 하였다고 한다.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는 우리 조상들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심은 국토방위의 유물로서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한계선인 강화도에 자리하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강화도 역사박물관 옆에 서 있는 갑곶리의 탱자나무는 나이가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4.2m, 뿌리부분 둘레 2.12m이다.
강화도는 고려 고종(재위 1213∼1259)이 몽고의 침입을 해 있었던 곳이며, 조선 인조(재위 1623∼1649)도 정묘호란(1627) 때 난을 피했던 장소이다. 이 때 외적을 막는 수단으로 강화도에 성을 쌓고, 성 바깥쪽에 탱자나무를 심어서 외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 탱자나무는 그 때 심은 것이 살아남은 것으로 추측된다.
강화도는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어서, 탱자나무를 처음 심었을 때 조정에서는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자세히 보고하게 하였다고 한다.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는 우리 조상들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심은 국토방위의 유물로서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한계선인 강화도에 자리하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수령(樹齡)은 400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4.2m, 지상부의 줄기 둘레는 2.12m이다. 3갈래로 갈라졌으며 가슴높이의 지름은 10㎝, 14㎝이다. 가지의 길이는 동서로 7.9m, 남북으로 8.3m이다. 운향과의 낙엽관목이며 3m 정도 자란다. 가지는 다소 편평하며 녹색이고 길이 3-5㎝의 굳센 가시가 있다. 잎은 호생(互生)하며 3출엽(出葉)이고 엽병(葉柄)에 날개가 있다. 소엽(小葉)은 두껍고 도란형 내지 타원형이며 끝이 둔하거나 파지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은 5월에 피고 희며 꽃받침잎과 꽃잎은 5개씩이고 수술은 많으며 자방에 털이 있다. 열매는 둥글고 지름 3㎝정도로서 향기가 좋으나 먹을 수 없고 약용으로 한다. 묘목은 귤나무의 태목(台木)으로 하고 성목(成木)은 남쪽에 있어서 산울타리로 이용하고 있다.
이 나무의 유래(由來)는 몽고군이 침공하였을 때 고려의 고종(高宗)께서 28년간 강화에서 정무(政務)를 살피셨고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조선조(朝鮮朝) 인조(仁祖)의 가족이 강화도에서 전란을 피하였다. 이러한 전란(戰亂)을 계기로 하여 성(城)을 튼튼히 쌓고 성벽을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성(城) 밑에 탱자나무를 심었다 한다. 성(城)은 무너져 없어졌으나 그 밑에서 적병(敵兵)의 발뿌리를 노리던 탱자나무의 일부는 남아있다. 따라서 국토방위(國土防衛)의 유물(遺物)이기도 하다.
강화도는 탱자나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북쪽의 한계지(限界地)이다. 여기에서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힘쓴 선구자들의 발자취를 직접 볼 수 있게 한 살아있는 증거물이다.
이 나무의 유래(由來)는 몽고군이 침공하였을 때 고려의 고종(高宗)께서 28년간 강화에서 정무(政務)를 살피셨고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조선조(朝鮮朝) 인조(仁祖)의 가족이 강화도에서 전란을 피하였다. 이러한 전란(戰亂)을 계기로 하여 성(城)을 튼튼히 쌓고 성벽을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성(城) 밑에 탱자나무를 심었다 한다. 성(城)은 무너져 없어졌으나 그 밑에서 적병(敵兵)의 발뿌리를 노리던 탱자나무의 일부는 남아있다. 따라서 국토방위(國土防衛)의 유물(遺物)이기도 하다.
강화도는 탱자나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북쪽의 한계지(限界地)이다. 여기에서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힘쓴 선구자들의 발자취를 직접 볼 수 있게 한 살아있는 증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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